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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부터 꼬인 '국가 개조' … 청와대 부실 검증 책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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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 옆 국무총리 자리는 지난달 27일 사퇴 의사를 밝힌 정홍원 총리가 참석하지 않아 비어 있다. 이 자리에 앉을 것으로 예상된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28일 후보직을 사퇴했다. [변선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28일 전격 사퇴하면서 ‘인선 파동’이 1년 만에 재연됐다. 여권은 지난해 김용준 총리 후보자,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등이 잇따라 낙마하면서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집권 직후와 달리 이번 안 후보자의 낙마는 충분히 결과가 예상 가능한 데이터를 갖고서도 권력 핵심이 판단을 그르쳐 발생한 경우다.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안 후보자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정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였다. 박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을 잘 아는 여권 인사들은 “박 대통령이 예전에 자기에게 대든 사람을 총리에 앉히겠다고 결심한 건 정말 큰마음을 먹은 것”이라며 “대대적인 국가 시스템 개조를 하겠다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안대희 카드가 위기 탈출의 소방수가 되긴커녕 또 다른 불을 지른 꼴이 됐다.

 사퇴 1시간여 뒤 브리핑을 하러 온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굳은 표정으로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 직전 김기춘 비서실장을 통해 사퇴 의사를 전달받았다는 소식만 전할 뿐 일절 질문도 받지 않고 춘추관을 떠났다. 민 대변인은 "대통령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김 실장이 말했다”고 전했다. 청와대와 상의 없이 사퇴 회견을 하는 바람에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언론을 통해 사퇴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야당이 안 후보자에게 무차별적인 의혹제기를 한 것에 대해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야당이 이런 식으로 총리 후보자를 물러나라고 하면 우리가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없다. 사사건건 발목만 잡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럼에도 낙마 사태의 1차적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당장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실장이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새누리당에서 나오고 있다.

이미 유력한 당권 주자인 김무성 의원은 최근 김 실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에선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홍경식 민정수석과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등 민정라인도 문책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관피아 청산’을 추진해야 할 새 총리가 전관예우를 받은 의혹이 있다는 걸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책임을 피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많다. 이는 결국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 개편 가능성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총리 지명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후속 개각 작업도 스텝이 크게 꼬이게 됐다. 새누리당은 이미 안 후보자와 김무성·최경환 의원,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김성호 전 국정원장 등 5명을 청와대에 총리 후보자로 추천한 상태다. 하지만 박 대통령으로선 후임 총리 인선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6·4 지방선거 이전에 새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선거 이후 후임 총리가 발표되면 인사청문회와 후임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통한 각료 인선 등의 수순을 감안했을 때 개각은 다음 달 중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이미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를 비롯해 교체가 유력시되는 각료들이 당분간 계속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어 박 대통령의 국정시스템 개조 구상이 차질을 빚게 됐다. 박 대통령이 27일 제시한 총리-경제부총리-사회부총리의 ‘책임내각’ 실험도 당분간 아이디어로 남을 전망이다.

 국가안보실장·국정원장 등 공석인 안보라인의 인선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한 친박계 인사는 “그동안 대통령이 너무 자신감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이젠 자신감을 상실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글=김정하·허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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