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시트·몸」은 정보원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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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생을 지극히 냉소적으로 묘사했던 영국 소설가 「서머시트·몸」은 그와 같은 인간관의 굴레를 스스로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어갔음이 최근 발간된 전기에 의해 밝혀졌다.
그의 조카이며 소설가인 「로빈·몸」이 쓴 『윌리(「몸」애칭)와의 대화』는 「몸」이 말년에 남불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자신의 생애가 완전한 실패였다는 회한에 싸여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로빈」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당신이 쓴 작품들이 전세계에 많은 독자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몸」은 『한 줄의 글도 안 썼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을 가리켜 『2류작가 중에서는 맨 앞줄에 서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던 적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작가로서의 한계를 누구보다 더 절실히 느꼈던 것 같다. 그는 또 죽음이 가까워 오자 자기 방에 널려있는 값진 가구들을 둘러보며 『의자 한 개도 가져갈 수가 없지 않은가?』라며 한탄, 추한 꼴을 보이기도 했다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한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다.
즉 1차대전 중 그는 정보요원으로 근무했으며 당시 수상인 「로이드·조지」의 밀명을 받고 1917년 2월혁명을 겪은 직후의 혼란속의 소련에 파견되었었다는 것이다.
그의 임무는 「케렌스키」과도정부에 접근해서 소련이 독일과 단독 휴전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케렌스키」수상을 쉽사리 만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로이드」 수상에게 가는 「메시지」를 받아 「오슬로」로 가서 영국 구축함을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그 답장을 갖고 다시 소련으로 가기 직전에 「케렌스키」정권이 「볼셰비키」혁명으로 넘어졌기 때문에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런던=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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