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행정의 개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행정의 좋고 그름은 국민의 편의가 얼마나 우선되느냐에 따라 가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정 처리가 신속하고 비용이 적게 들어 행정 관서와의 관계에서 국민이 편하면 이는 훌륭한 행정이다. 반대로 비능률과 부정부패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행태 때문에 국민이 불편을 겪게 되면 졸렬한 행정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행정의 개선 방안이 논의된 경우, 그 방안의 합리성을 가리는 기준으로는 행정의 비능률과 부정부패 및 불공정의 억제 가능성이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
행정 풍토의 쇄신 방안으로 내무 당국은 생활 민원의 기동성 있는 처리, 이해가 얽힌 민원 업무의 공개 처리, 복합 민원의 동시 처리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시정의 방향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는 것으로 문제는 그것이 정작 일선의 민원 행정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실천되느냐다.
생활 민원이란 일반 주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상하수도와 오물 수거 행정은 그 동안 꾸준히 개선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개선의 여지는 적지 않다.
수도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조차 급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민이 1할에 가깝다. 급수 지역인 경우에도 계절적인 이유 등으로 수압이 약해져 급수가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생긴다.
더구나 요즘에는 약간만 수압이 약해져도 가정용 양수 「펌프」를 가동하는 가정이 늘어나 그 주변의 급수난을 가중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급수량을 늘리고 고장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은 물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주민들이 함께 나누어 쓰도록 지도·계몽하는데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이해가 얽힌 민원 업무의 공개 처리란 지침은 부조리와 불공정의 여지를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 하다.
다만 서정쇄신 추진위 같은 기구의 공개 심의를 거치게 되면 민원 처리가 그만큼 비능률적으로 지체될 염려가 없지도 않다. 또 관계 공무원들이 이러한 절차를 책임 모면의 한 방편으로 남용함으로써 행정의 비능률을 심화시킬 위험도 따른다.
따라서 공개 처리를 해야 할 민원의 중류를 엄격하게 선정하여 목적하는바 공정성과 합리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능률도 저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겠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민원 행정이 개선되려면 이를 담당하는 관료의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과 행태의 개선이 앞서야 한다.
지난 수년간 정부는 연례 행사처럼 민원 업무의 처리 기간을 단축한다. 구비 서류를 간소화한다, 처리 권한을 하부 기관에 이양한다는 등 민원 업무의 개선·간소화 조치를 해 왔다.
이렇게 매년 개선을 거듭했으면 지금쯤은 민원 행정의 문제점이 일소되었어야 할 터인데 실제로는 아직 그렇지가 못하다.
이것만 봐도 민원 행정의 문제는 제도 개선의 문제이기에 앞서, 사람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공무원들의 권위주의적인 정신 자세의 개혁 없이 민원 행정에서 민원 요소의 일소가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