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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등급 학생 40% 넘으면 시끌, 시험 쉽게 낼 수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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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은 학생들 학력 수준이 높아서 조금만 쉽게 내면 A등급(90점 이상)이 40%를 넘어버린다. 변별력을 위해 어렵게 내면 강남 학교는 시험문제가 어렵다는 비판을 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수학 교사인 김모(42)씨는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마다 매번 골머리를 앓는다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사실 김 교사의 고민은 2012년 중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절대평가(성취평가제)가 도입되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도입 3년째지만 일선 학교의 혼란은 여전하다. 현재 절대평가는 중학교 1~3학년 전체와 고교 1학년까지 적용되고 있다. 2016학년도에 모든 중·고교에 절대평가를 적용한다. 교육부가 절대평가를 도입한 이유는 명확하다. 상대평가의 성적 줄세우기 폐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은 해당 학년에서 꼭 배워야 할 성취 목표와 기준을 단원별로 상세하게 일선 학교에 배포하고 있다. 각 학교에선 이것을 기준 삼아 교육과정과 시험문제 난이도를 조정한다. 취지대로라면 전국 어느 학교를 다니든 일정 수준 이상을 충족하면 동일 등급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서울 강남·양천·노원구 등 소위 ‘교육특구’와 강북·도봉구 등 강북 학교는 시험 난이도에서 큰 편차를 보였다. <관계기사 열려라 공부 1면>

교육특구의 중학교 시험 문제가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 탓이다. 정책은 학습부담 경감과 사교육 근절을 목표로 한다지만 학교 현장은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내신으로 선발하는 고교입시가 근본 원인이다. 이들 학교 재학생의 높은 학업성취도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강남권 학교에서 A등급 비율이 높으면 무조건 성적 부풀리기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특정 등급 비율이 너무 높게 나오지 않도록 시험 문제를 출제하라고 지도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책과 이원실 장학사는 “A 등급 비율이 40%를 넘으면 시험 난이도가 적정선이었는지 점검을 나간다”고 말했다. 사실상 A등급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어렵게 문제를 출제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강남의 한 중학교 수학교사는 “강남의 대다수 선생님들은 A등급 비율이 너무 높지 않게 평균 70점을 목표로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며 “A등급이 40%를 넘어가면 시끄러워지기 때문에 시험 난이도를 낮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운동 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수학사교육포럼 최수일 대표는 “교육특구 지역과 아닌 지역 간 학교 시험 난이도 차는 지금보다 더 벌어질 수 있다”며 “특정 등급 비율에 제한을 두는 조치가 결과적으로 절대평가의 원래 취지를 왜곡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다른 많은 교사들도 “겉으로만 절대평가일 뿐 속내를 보면 상대평가와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경희고 홍창섭 교사는 “고교·대학 입시에서 절대평가를 어떻게 반영할지 정확한 대안 없이 시행부터 해버리니 이도 저도 아닌 반쪽 짜리 절대평가가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외고·국제고가 입시에 반영하는 중3 영어 성적을 기존의 상대평가로 반영하기로 하면서 절대평가 무용론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최 대표는 “지역·학교 간 학력 격차를 솔직히 인정하는 게 맞다”며 “강남 등 학력 수준이 높은 곳에선 A등급이 높게 나오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낮게 나오는게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말했다. 부천북중 류상주 교사는 “전국 공통의 각 단원별 성취 목표와 기준이 있으니 교육부·교육청이 난이도 상·중·하의 문제 예시를 풍부하게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며 “이를 참고해 난이도가 과하게 높은 학교는 낮추고, 반대로 너무 쉽게 내는 학교는 적정 수준 난이도를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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