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농촌은 이미 어제의「시골」이 아니다…전국 특별취재|주거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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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초가삼간」으로 표현되던 시골의 집들은 간데 없고 울긋불긋 색칠된 한양절충식 가옥들이 마을에 가득했다.
고속도로변이나 국도변 또는 철도변 어디를 가나 우리 농촌의 모습은 놀랄 만큼 바뀌고 있다.
「농촌의 주거혁명」이라고나 할까. 새집을 짓는 일손이 어디를 가나 부산하다. 취락구조 개선사업이 한창인 전북 완주군 조촌면 부동마을은 온통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다. 24채 가운데 18평형 18채와 20평형 2채를 새로 짓는 공사로 마을사람들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평당 20만원 짜리>
작년의 소득 1백20만원을 올린 백영동씨(42)는 방3개에 목욕탕과 부엌이 달린 18평짜리 새집을 짓게 되어 기쁘기는 하지만 자신의 형편으로 무리를 할밖에 없었다고 했다.
18평형 집을 짓는데 드는 자금은 평당 20만원으로 쳐도 3백60만원은 드는 것이지만 융자금과 인건비의 절약으로 대충 2백50만원은 들것으로 어림 잡는다.
5년 거치 15년 체증 상환식으로 되어있는 1백60만원의 융자금을 얻기 위해 백씨는 이웃 5가구와 상호연대보증을 서고 세웠다. 마을 앞에 집단「블록」제조시설을 만들어 정초부터 미리「블록」을 찍어냈다. 그밖의 건자재는 융자금으로 사서 군의협조로 실어 날랐다.
집 짓는 일은 물론 마을사람들이 서로 품앗이 방식으로 돌아가며 도와준다 쳐도 목수와 미장이는 기술자를 데려다 써야한다. 일류 기술자도 아닌데 건설공사「붐」이라서 일당 4천5백원에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
원래 도와 군에서 전문기술자들을 충분히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 그것이 순조롭지 않다. 군의 건축담당 직원이 단 1명뿐이라서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진행되는 공사를 충분히 뒷바라지할 수도 없다.
그래서「블록」으로 몸체를 쌓아 올리고 나서 인방을 하지 않고 있다고 뒤늦게 도의 감독관이 지적하기도 한다. 인방을 하지 않은 집에 창틀은 벌써 일그러져 있었다.

<문화생활의 기쁨>
호남고속도로가 5백m쯤을 지나는 마을엔 놀이터와 마을회관, 공동축사와 퇴비사가 도비 1천 만원을 받아 마련되고 있다.
농한기를 이용해 지난 2월24일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한달 정도는 임시로 지은 움막에서 늦추위를 견뎌야 한다.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학곡1리 사래울 마을이나 전남 곡성군 석곡면 봉전리 봉암마을도 작년에 시범 취락구조 개선마을로 지정되어 몽땅 새로 건설된 마을. 사래울 마을은 20동, 봉암마을은 39동이다.
가구당 소득이 평균 1백30만원이 넘는 자립마을이었지만 새집을 갖는데는 역시 무리가 있었다. 형편이 다른 집들이 한꺼번에 집을 짓는 바람에 50여만원의 빛을 짊어진 사람도 생겼고 농번기를 피해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움막이나「텐트」에서 온 가족이 2, 3달 떨어야 했다.
그러나 이른바 문화주택을 새로 지어들고 문화생활의 맛을 즐기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은 또 유별났다. 청·홍기와에 석벽, 이중창문에「알루미늄·새시」, 입식부엌, 양변기 시설, 거기에 전기·수도가 들어오니 도시중산층 주택에 손색이 없다.
사래울 주민 안박정씨(37)는 부인 윤옥자씨(34)와 삼남매가 방 세개짜리 18평형 새집이 깨끗하고 편해 좋다고 말했다. 특히 부엌에서도 수도물이 나와 부인이 일거리가 줄었다며 제일 반겼다.
올 가을엔 새집에 알맞는 가구를 장만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올해엔 5년 거치 15년 체증 상환의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18평형의 경우 1백60만원을 융자받을 수 있지만 작년만 해도 융자규모는 90만원에 지나지 않아 중농 이하의 농민들은 더욱 고통을 겪어야했다.
봉암마을의 박덕환씨(45)는 그런 조건에서 마을사람들이 50만∼70만원의 빚을 냈다고 했다. 봉암마을은 기존의 건물들을 몽땅 헐고「불도저」로 정지한 뒤 39채의 새집을 지은 취락구조개선마을, 그러나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집을 배치한 때문에 너무 딱딱한 느낌을 준다. 지형의 변화를 살려 건물을 앉혔으면 하는 아쉬움 들이다.
아뭏든 이런 몸부림으로 농촌의 주거환경이 일신되고 있다. 초가삼간 토담집이 띄엄띄엄 모여 자연부락을 이루고 지게나 겨우 지나다녀야 했던 좁은 고삿길은 사라지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경운기나 반「트럭」이 마을 안길로 들어오고 TV와 냉장고가 낯설지 않은 농촌이 되었다. 쾌적하고 안락한 문화생활이 농민들 눈앞에 펼쳐있다.
그 점에서 농촌주택개량사업은 농촌혁명이다. 『우리 나라의 집은 비록 1천호나 되는 고을이라고 하더라도 반듯하고 살만한 집이 하나도 없다』고 개탄하였던 실학자 박제가의 말을 회상한다면 이것은 가히 「주거문화혁명」이랄 수 있다.
그러나「불도저」로 밀어버린 마을 위에 새로 생긴 마을이 자연과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촌스런 치장을 고치려는 노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이미 순수한 한식 기와집과 초가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나 뒤늦게나마 충남에선 올해부터 군마다 한군데씩 민속보존마을을 둘 계획이고 전북에선 한식기와집과 옹마루·흙담을 권장하고 있다.
농촌주택개량사업도 차차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면서 정말 내실있는 서구형 농촌을 이룩할지-.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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