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작가의 작품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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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일원은 『월북작가들의 작품규제를 완화한다』는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완화의 전제조건으론 『월북전의 비좌경적 작품에 한한다』는 것과, 반공법·국가보안법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의 『연구목적의 경우에 한한다』는 것이 명시되었다.
그동안 한국현대문학사 연구엔 일부 작가들의 월북사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공백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이 처해온 그간의 정치적·사상적 특수상황에 비추어 불가피하고 타당한 조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또 이번의 규제완화 방침 역시 그러한 법적·사상적 반공체계 자체의 변동을 의미하는 것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어디까지나 기존의 반공 가치관과 법질서 안에서 학문연구상의 자료접근 편의를 보다 융통성 있게 제공토록 한다는 것뿐이며, 연구가들의 희망 역시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여하튼 우리 정부의 문화정책의 폭이 그만큼 신장되었다는 것은 인상적인 일이며, 이러한 자신있는 자세는 다른 많은 학문분야와 연구대상에 있어서도 십분 적용돼 나갈만한 것이라 평가된다. 국력신장과 승공정신의 앙양에 따라 우리의 반공도 소극적인 기피자세에서 적극적인 대응으로 전진해나가야 하겠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학면에서만 보더라도 모든 월북작가들의 모든 작품들을 무조건 일괄금기 또는 기피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해서 학문적 연구의 자료로 참조하는 편이 우리의 민족사적 정통성의 확립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월북작가들 가운데는 시종일관 당성이 강한 프로문학의 골수분자가 있지만, 반면 그 일부엔 8·15후 혼란기에 갑자기 좌경했던 부동적 부류도 없지 않았으며, 몇몇은 납치인지 월북인지조차 분명치 않은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이 경우, 후자의 부류의 좌경 전 순수문학 작품들-예컨대 지용의 일부 시나 기림의 모더니즘 시 따위-을 전문연구가들의 학적 고찰의 대상으로 삼게 한다는 것은 30∼40년대 문학사와 사조사 일반의 조명에 적잖은 참고가 될 것이며, 그것은 바로 넓은 의미의 국가이익으로도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문제는 이 방침을 적용하는데 있어 보다 상세하고 뚜렷한 기준과 규칙이 실정·명시돼야 하겠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용자와 취급자들이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옳을지 분간을 하지 못해, 불필요한 곤혹과 혼선·오해를 빚을 우려가 없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우선 누구의 어느 작품은 괜찮고, 어느 것은 안된다고 하는 구체적 한계가 뚜렷이 정해져야 하겠다. 이것은 당국에서 아예 유권적으로 지정해서 공시를 해주든지, 아니면 전문가들의 중의에 붙여 컨센서스를 추출해내든지 하면 될 것이다.
출판과 배본문제에 있어선 「대중시판 금지」에다 「특정 인가기관에 지정배본」이 명시되었으니 이점은 명확해진 셈이다. 그러나 부수 간행물 취급인가기관에 들어가 필요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자의 자격요건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작가든 평론가든 누구라도 희망만 하면 얼마든지 열람이 허용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문학전공 대학교수들만이 볼 수 있다는 것인지, 앞으로의 시행규칙이 주목거리다.
뿐만 아니라 열람한 후 그것을 평론이나 논문에 인용·해제할 수 있는지의 여부도 분명히 가려줘야 할 점이다.
연구목적이란 또한 대학이나 학회의 논문집이나 학위논문 집필에만 해당하는 것이냐, 아니면 신문·잡지의 문학평론에도 해당하는 것이냐도 명확히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제 하나의 적극적 문학시책은 천명되었다. 이 시책을 과연 어떻게 선용하고 적용하느냐는 당국의 효과적인 운용세칙과 이용자의 현명한 적용태도 여하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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