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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거동…폭동같잖아"|미국영사관서 군중 기세 북돋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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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다음은 편지내용.
『고종황제의 국장 당일에 조선국민들이 무언가 국내에서 큰소동이 있으리라는 예견을 하고있었던바 과연 오늘 학생단의 자유운동을 보게 되었읍니다.
상당히 연락이 잘되어 있는것처럼 보이며 현재 이 싯점까지의 정보에 따르면 선천·평양·진남포·원산등에도 같은운동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평양의 경우 경찰당국은 천도교·기독교·청년회일파가 국장 당일 무언가 운동을 일으키리라는 정보를 동경으로부터 연락 받고 수일전부터 이를 수사하는데 힘을 다했던바 드디어 어젯밤 이것을 입수, 그주모자를 탐지했으며 오늘 정오전에 일제검거에 착수, 손병희 권동진등 일파 20명을 검거했읍니다.
한편 오늘 정오께 「파고다」공원에서는 관·공·사립학교학생들이 일부 집합, 독립을 선언하고 불온 연설을하며 군중을 집합시켰고 그 본대는 대한문을 지나 본정통(현 충무로)을 거쳐 마침 총독부(남산에 있었음)에 도달하려고 했으나 미리 집결하고있던 경찰당국이 본정1정목의 「미쓰꼬시」(삼월) 출장소(현 신세계백화점자리)에서 군중을 급습, 주모자로 보이는 약 50명을 체포했습니다. 또한 군중도 해산시켜 하오5시께는 대체로 진정되었읍니다.
군중의 대부분은 학생으로서 주로 의학전문학교에서 수학하는자와 다른 관·공·사립학교학생이었으며 이속에는 여학생도있었읍니다. 운동방법은 극히 당당하여 오직 독립달성을 부르짖었으며 별로 폭동으로는 나오지 않았읍니다.
다만 종로부근에서는 종로서마당안에 돌을 던졌으며 본정통에서는 경찰관과 충돌, 투석·격투가 일어났고 이때문에 주위건물이 다소 파괴되었읍니다.
주모자가 천도교·기독교 일파인것은 가택 수사결과 명료합니다.
미국 선교사 일파가 이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아직 명백하지는 않지만 수일전 미국 영사가 국내에 있는 선교사에대해 정치운동에 가담하여 일본과 미국의 국교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통첩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상한것은 오늘 군중의 일부가 미국영사관 근처에 이르자 영사관안에서 미국국기를 높이 올리고 군중의 기세를 북돋워 준사실이 있읍니다.
또한 일찍부터 요주의 인물이라고 보고있던 인천의 모조선인 목사가 오늘 미국영사를 면회하고 오늘의 상황을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한 미국대표에게 전보로 알려달라는 위촉을했고 이를 승낙했다는 풍문도있읍니다.
경찰은 즉시 이 목사를 구속하려고 뛰어갔으나 영사관에서 이를 보호한 혐의가 있읍니다.
목하 경찰당국에서 이에대한 조치를 강구중에 있습니다. 천도교에서는 이 사건(3·1운동) 을 위해 약3백수만원의 자금을 모금했다고하며 오늘의 비용은 약5천원이나 지불됐다고 합니다.
이 독립선언서에 관계가 있는지없는지는 불명하지만 오늘 아침각지방에 날조기사를 인쇄, 배분한자가 있어 민심을 동요, 자극시켰다고 합니다.
이 날조기사는 이태왕(고종황제)의 몽거는 윤덕영·한○학등이 독살한것이며 그 이유는 일본이 「파리」 강화회의에 임하면서 조선의 민심은 합방에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를 만들기위해 이완용·조중응·손병준·김윤식등으로 하여금 각○○을 대표시켜 그 연명서를 이태왕에게 제출했으나 이태왕이 이의 조인을 거부함에 따라 독살한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조선 국민은 최후의 한사람이 될때까지 이 원수를 갚기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3·1운동)은 실로 용의주도하여 전국각지에서 때를 같이하여 소동이 시작됐고 지방에 따라서는 면장등이 군수·부군등의 직함을 위조하여 조선의 독립은 이미 성립되었다는 것을 통지한 것도 있었습니다.
볼온인쇄물은 모두 천도교의 인쇄소에서 인쇄한것이며 전국 인쇄소에서 인쇄한 것이 전국에 배포하여 평북의 금산읍까지도 도달하고 있습니다.
우선 현재까지의 사태를 이상과같이 보고드립니다. 3월1일 밤 「고다마」각하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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