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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수난구호법이 '민관유착법'으로 몰리는 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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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한 퇴직관료는 관피아 논란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공무원은 법에 따라 곧이곧대로 집행한다. 소위 관피아라는 것도 법에 없는 짓을 한 게 아닌데 마피아 같은 무법자처럼 몰리는 건 씁쓸하다.” 그런가 하면 요즘 사법부도 큰 사건이 터지면 시민사회가 나서 기소할 죄목을 주문하고, 법원의 판결 형량을 놓고 비난하는 사례가 늘어 당혹스럽단다. 사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우린 법에 따라 판단할 뿐, 법이 그런 걸 어떻게 하느냐.” 한마디로 사람 문제가 아니라 ‘법(法)’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그동안 행정·사법에 대해선 불신 어린 문제 제기가 많았지만 입법 자체를 문제 삼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세월호 사고 이후 관피아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 입법이 관피아에 온상을 제공해왔다’는 의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최근 민관유착법의 대표주자로 찍힌 게 2011년 개정된 ‘수난구호법’이다. 수난구호법은 바다나 하천 등 물 위에서 일어난 각종 수난(水難) 시 구호활동을 정부와 민간이 복합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법으로 1961년 제정된 후 큰 사고를 거치며 현실적 요청으로 고쳐져왔다. 수난과 관련해선 매우 중요한 공법인데, 최근 일각에서 ‘해경-언딘 유착법’ 혹은 ‘해피아법’이라며 입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태를 맞은 것이다.

 세월호 침몰 후 해경이 민간업체 언딘에 구조작업을 일임하기 위해 구조의 골든타임이었던 이틀 동안 미리 도착한 해군이나 민간 잠수사들을 잠수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는 의혹이 퍼지면서 이 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언딘의 대표이사가 한국해양구조협회(해구협)의 부총재인데, 해구협이 개정된 수난구호법 26조에 의해 2013년에 창립됐기 때문이다.

 이에 이 법이 실제로 ‘민관유착법’인지 따져보기 위해 해양법 관련 전문가·변호사와 이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 등을 취재했다. 이춘원 변호사는 “개정법 28조 협회의 회원 자격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도록 위임한 것은 주무행정부서인 해양경찰청의 의사에 따라 회원의 자격이 결정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행령의 회원자격을 보면 해양경찰관 5년 이상 근무자와 해양경찰청장이 임명한 자 등을 규정함으로써 해경의 결정권을 극대화했다.

 이에 대해 발의에 참여했던 국회의원은 “다른 정부기구 관련 법들과 비교해 이 법이 해경에 더 유리하게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행령까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들은 주무부처의 권한을 막강하게 부여하는 것이 관습화돼 있다. 국회의원들은 다른 기관들의 선례에 따라 비슷하게 권한을 부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입법의 기술’ 중 하나라고 했다. 국회의원은 “입법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라며 “해경이 문제이지 법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입법에는 문제가 없었을까? 이를 취재하며 느꼈던 건 국회의원들의 ‘입법 매너리즘’과 ‘현장에 대한 무지’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바뀌는데 다른 유사법의 법 조항과 균형만 따지는 ‘입법의 기술’과 그동안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관성’이 지배하며 오히려 시대정신과 역행하는 법을 만들 위험성도 있어 보였다.

 한 예로 우선 ‘민관협력’의 화두가 던져지면 먼저 ‘협회’부터 만든다. 해구협이 그런 발상이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엔 나름 효율적이었던 관주도 협회가 요즘은 자기들끼리 민관유착의 울타리를 쳐놓고, 정부 지원금 받아 챙기고, 정부용역을 나눠먹기 하면서 경쟁자들의 진입을 막아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수준을 퇴행시킨다는 비난을 받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 일부에선 ‘협회는 악’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물론 수난구호법 개정 당시 상임위에서 “연합회가 정부보조금이나 받고 민관유착의 고리 역할만 할 것”이라는 소수 의견이 개진됐지만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당시 발의 국회의원에게 ‘이런 협회의 문제점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모른다. 원래 국회의원이 그런 거에 약하다”고 말했다. 현장을 모르고 법을 만든 것이다.

 주변취재를 하느라 다른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수난구호법’이라는 말에 갑자기 자기 보좌관을 불러 ‘수난구호법에 사인해준 적 있느냐’고 묻는 등 전화기 저편이 어수선해졌다. “발의자 명단에 당신은 없다”고 확인해준 다음에야 그는 진정이 됐다. 일부 국회의원은 “나를 음해하지 말라. 그 많은 법 중에 내가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느냐”며 역정부터 내기도 했다.

 도대체 입법안은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고 발의되는 것일까. 국회의원이 때로 자신도 모르는 법에 사인해주거나 자신이 발의한 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악의를 가지고 입법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정치(精緻)하지 못한 국회의 입법이 행정·사법부로 하여금 ‘법 때문에 우리가 악으로 몰리고 있다’는 핑계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우리 행정·사법부는 모두 신뢰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젠 법 자체가 불신의 명단에 오를 기세다. 이젠 국회의원들이 입법에 긴장감과 현장감을 갖도록 시민사회가 감시할 때가 된 것 같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