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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개혁 전담할 국가개혁위원회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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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 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세월호 침몰 이후 한 달 넘게 거론돼 온 문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방향이나 보완할 점, 빠진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안전행정부를 국가안전처+행정혁신처+지방자치로 분리한다는 방안에는 공감이 간다. 불현듯 1999년 정부조직 개편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개편 작업을 공동 추진하던 기획예산위원회와 행정자치부는 각자 초안을 만들어 조율을 위한 입씨름을 벌였다. 기획예산위원회는 행정자치부를 재난안전+인사조직+자치지원 기능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FEMA)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가 극렬 반대하는 방안이 성사될 수는 없었다.

 이번 대통령의 담화는 15년 전 기획예산위원회의 구상대로다. 정부 전체의 인사·조직을 관장하면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안행부가 재난안전 기능을 자신에게 선물한 셈이다. 선수의 심판 기능은 분리돼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획재정부도 심판(예산, 재정·공공기관 관리)과 선수를 따로 떼서 과거의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참에 이명박 정부가 만들었던 대부처주의를 재고해 보자. 부처가 커지면 관련 기능끼리 시너지를 내는 장점은 있다. 반면 통솔 범위가 커져 장관이 내용을 챙기기 어려워진다. 안전관리본부처럼 부처 내에서 홀대 받는 조직도 생긴다. 또 직원들이 이질적인 부서로 순환보직을 하다 보니 전문성도 떨어진다. 좋은 정책을 만들려면 실·국장이 장관을 자주 만나야 하는데 부처가 커지면서 장관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현상은 세종시 출범 이후 더 심해졌다. 장관이 바쁘니 대부처의 시너지는 사라지고 단점만 드러나고 있다. 세종시야 할 수 없다 해도 큰 부처라도 분리해 주자. 그래야 정책의 질이 향상된다. ‘작은 정부’란 장관 숫자가 작은 정부가 아니라 지출과 규제가 작은 정부다.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폐쇄성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전문가 채용 확대를 발표했다. 공직사회 진입 경로의 다양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진입로가 고시인지 민간경력직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고시 출신도 원래는 민간인이었다. 오히려 평생 공직에 있을지, 계약직인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민간 출신이라도 공직에 뼈를 묻으려 하면 결국 고시 출신과 별 차이가 없다. 계약직으로 몇 년간 치열하게 일하다 원래의 민간인 자리로 복귀하는 사람이야말로 공직의 폐쇄성을 허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개방형 임용제를 과장급에도 대폭 확대하고 개방된 자리를 매력 있게 할 필요가 있다. 반면 고시제도는 유지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고시는 공직의 필요지식을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준비시키는 투명한 절차로서 가치가 크다. 사법고시도 폐지되는 마당에 가진 것 없어도 시험 하나로 신분 상승하는 통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퇴직공무원 취업제한 강화도 발표에 포함됐다. 그러나 공무원의 봉직기간을 늘리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현재 고위 공무원이 대개 50대 중반에 퇴직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재취업을 막는 것은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손실이다. 공무원 초빙연구위원제를 대폭 도입하면 어떨까. 무보직 공무원 여러 명을 출연연구기관에 1~3년씩 파견해 연구에 참여토록 하는 제도다. 공직자의 현실감각은 기존 연구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연구 기능이 부처 내에 공존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그렇다. 초빙연구위원이 다시 보직을 받는 길을 열어 놓는다면 연구 경험을 정책수립에 활용하는 장점도 발생한다. 퇴직 직전의 공직자에게는 앞으로 3년으로 늘어날 취업제한 기간 동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든 실제로 연구에 매달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담화에서 국가개조를 위한 추진체계 언급이 없는 것은 아쉽다. 설마 안전행정부에서 분리되는 행정혁신처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닐 걸로 믿는다. 관리자는 개혁자가 될 수 없다. 개혁을 추진하는 조직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줄 것, 관리 업무 없이 개혁에만 전념할 것, 모든 분야를 개혁할 수 있을 것, 직업 공무원과 계약직 공무원을 섞어 놓을 것 등이 그것이다. 고유업무 없이 타 부처를 개혁하는 일에 전념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1998년의 기획예산위원회 정부개혁실, 그 이전에는 경제기획원이 그 일을 했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조직이 없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개혁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 이 위원회는 민간 위원장 밑에 각 부처 장관과 민간 전문가가 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국정기획수석이 간사위원이 되는 방안도 가능하다. 강력한 사무처를 두되 국정기획수석실 비서관이 사무처장을 맡는 과거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모델을 따르는 것도 좋겠다. 실종자에 대한 수색, 진상조사 등 세월호의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가개조를 더 미룰 수는 없다. 누가 대한민국을 개혁할 것인가.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