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한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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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춘향전에 보면 거지꼴을 하고 돌아온 이도령에게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춘향 어머니는 보약을 달여 먹인다.
심청전에서도 더듬거리면서 심 봉사는 곽씨 부인에게 약을 달여 마시라고 권하는 장면 이 나온다.
두 장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춘향이나 심 봉사나 정성스레 약을 달인다. 그래야 약효가 있다.
그러기에 한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을 달이는 일이다. 옛날 며느리들이 심술궂은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구실이 되는 것도 약 달이기다.
실제로 약 달이기는 매우 까다롭다. 감기에 제일 좋다는 갈근탕을<상한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달여 먹으라고 엄격히 이르고 있다.『먼저 물1되에 마 황과 갈 근을 넣고 달여 물이 2승쯤 줄면 흰 거품을 건져 낸 다음 계피, 생강, 감초, 작약, 대추를 넣어 1승만 남게 달여 마신다.
달여 먹지 않는 한약도 있다. 중년이후에 좋다는 팔매지황 환은 벌꿀로 생약가루를 굳혀 만든 환약이다. <우심방>에는 수십 개의 연단석약이 열거되어 있기도 하다.
「아라비아」의학의 영향을 받은 다음부터는 증류라는 새 기술에 의해「시럽」제며「정기」제동도 생겨났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인스턴트」문화의 시대에서「인스턴트」한약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3백1가지나 산·정제 한약이 시판되고 있다. 쌍화탕이「드링크」제와 같이 팔리기 시작한지도 오래 된다. 일본에서는「인스턴트·코피」식에서「에키스산」이니 과립 제 등까지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인스턴트·코피」맛이 좋아졌다 해도「레귤러·코피」를 끓여 먹는 맛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뭣 보다도 냄새가 다르다.
주의도 마찬가지다. 양 약은 맛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다. 적어도 환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처방을 고를 때 환자 입에 제일 맞는 것을 며칠씩 시험해 가며 고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한약의 독특한 맛이며 냄새가 정제에는 없다. 효력도 다를 것이다. 원 방에서는 「구」「산」을 쓰라고 지시되어 있어도 급히 효과를 보려 할 때에는 달여 먹도록 한다.
역시 한약은 상을 잔뜩 찌푸리고 코를 틀어막아 가며 꿀꺽 단숨에 마셔야 하는 것도 같다.
이게 단순한 심리적 효과인지 아닌지는 확실치가 않다. 한약을 달여서 농축시켜서 알약으로 만드는 동안에 약효가 과연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시원스레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더욱이 한약은 생약이라 상하기도 쉽다. 따라서 방부제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도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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