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해난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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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해바다 대화퇴 근해에서 일어났던 어선 조난 참사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가운데 지난17일 같은 바다에서 또 다시 대형 조난사고가 발생, 29명의 선원이 사망하는 희생을 빚었다.
이번 사고는 16개월 전 2백60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바로 그 대화퇴 사고의 재판이나 다름없다.
사고 발생 상황이나 여건이 그때나 이번이나 매한가지다. 그 참혹했던 비극적 사건의 교훈이 조금도 살려지지 않은채 바다의 조난은 이게 상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대화퇴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문제된 것은 뒤늦은 일기예보다.
사고 당일 관상대는 상오까지도 아무런 기상변화 예보가 없다가 강풍과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한 하오3시가 지나고서야 대설 주의보를 발했다.
이렇게 뒤늦은 일기예보는 출항전의 어선들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미 피항지에서 멀리 떨어져 조업 중인 어선들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우선 일기예보·폭풍경보 등 통보관 등을 민첩하고 철저히 할 수 있도록 경보체제와 시설의 개선 강화책이 강구돼야 한다.
이와 함께 근원적으로는 역시 어민들의 생존수단인 어선 및 장비의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폭풍과 파도 속에서의 안전도는 전적으로 어선의 장비 여하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현재 동해안 연안어선은 대부분이 선령 20∼30년이나 되는 낡은 통통 배인데다 장비라고는 겨우 나침반과 장난감 같은 무전기뿐인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이 해역에 출어하는 어선들은 적어도 1백t 이상의 대형선박으로「팩시밀리」 송수신 시설·고성능 무전기·「텔렉스」등 시시각각으로 기상예보를 받을 수 있는 통신기기를 갖추고 있다.
이들 일본 어선들은 하루 4회 이상 정확한 기상 예보와 특수기상 통보를 소상하게 받아 해난사고에 사전 대비할 뿐 아니라 태풍이 닥칠 때는 1만5천t급 대형 구조선이 출동, 10m이상의 삼각 파도에도 끄떡 않고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의 원양 어선단이 비교적 우수한 기술과 장비로 5대양을 누비는 현실과 비교할 때 연안어업의 장비 개선문제는 너무도 원시적 상태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수산당국은 어선의 대형화와 각종 어로장비의 현대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다. 여기에는 과감한 투자유도와 아울러 담보력이 약한 영세 어민들에게도 수산자금을 대부해주는 방안 등 다각적인 대책이 포함돼야 한다.
어민 지원 및 장비 현대화 문제에 대해서는 박정희 대통령도 이미 지난번 대화퇴 사고를 계기로 시급히 대책을 마련토록 지시한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똑같은 유형의 대규모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정부가 있고 수산청이 있으며 수협이 있는 이상 어민들을 무기한 이처럼 위험한 상태로 버려 두는 일은 용납될 수 없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최근들어 연안 수산자원은 날이 갈수록 고갈돼가고 원양어업의 국내시장 침식 등으로 영세 어민들의 생업은 그렇잖아도 불안정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볼 때 어선 및 장비의 개선이나 안전 대책은 어민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는 절실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하겠다.
이와 병행해서 구조 장비의 대형화와「헬리콥터」등 기동력 보강도 시급히 이루어져야할 과제다.
일단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구조작업이 기민하고 철저하다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조난 사고가 나도 피해 실태조차 파악하기가 어렵고, 폭풍이 잠잠해지기 전에는 구조활동마저 제대로 펴지 못한다면 조난자의 구조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다.
해난사고의 반복적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그동안 겪었던 숱한 조난 사고의 인과 관계를 검토하여 대비책을 마련하는 성의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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