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배해진 독서 기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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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래에 와서 우리나라의 독서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시사가 여러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중앙일보·동양방송이 국내 몇 개 지방도시에 세운 중앙 도서관의 이용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격증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 한가지 실례라 할 수 있겠다.
이런 현상은『한국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던 불과 몇 년 전까지의 편견과는 판이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최근 몇 해 동안의 각종 통계자료를 봐도 그 점은 뚜렷이 드러난다.
69년의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람의 1인 평균 독서 양은 1년에 2「페이지」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던 것이 74년에 와선 평균 5∼10권으로 급증하더니 77년 현재론 하루 평균 8만2천명의 인구가 책방에 들러 책 한권씩을 산다는 놀라운 통계마저 나왔다.
특히 인상깊은 것은 바쁜 작업「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여성 근로자들까지도 최소한 하루 1시간씩은 독서를 한다는 통계다. 그것도 대부분이 「재미」보다는 『교양과 정서를 위해서』 가 주목적이라 했다. 이점은 독서의 양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상당한 「고급화」지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실제로 어떤 조사결과에 의하면 『소설을 읽는 동기가 무엇이냐』는 설문에 대한 답변 중 『재미를 위해서』가 12·4%인데 반해『정서함양 목적』이 49·8%, 『교훈을 얻으려고』가 20·2%나 되었다 한다.
한 가지 더 지적할만한 현상으로서 75년 이후론 종교 서적이 당당「베스트·셀러」반열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런 독서열 부흥과 활자 문화에의 관심고조는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한 마디로 저질 대중 문화에의 식상이 고급 활자문화에의 새로운 향수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업화와 소비시대에 발맞추듯 한동안 우리 사회에는 활자문화가 쇠퇴하고, 촉각 문화가 판을 치는 듯한 경향이 우심했었다. 사람들의 취향과 체질 역시 책보다는 잡지를, 잡지보다는 만화를, 만화보다는 「스크린」과 영상을, 그리고 ??음「리듬」에 더 심취하는 습성에 젖어들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나 문화풍토의 전반적인「패턴」역시 말초적인 향락추구·반 논리주의·사고기피 성향으로 기우는 경향마저 없지 않았다. 창조적이고 가치 판단적인 인간형보다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인스턴트」인간형이 주조되기에 썩 좋은 여건이 무르익었던 것이다.
가령 『「카라마조프」형제』를 영화로만 본 사람이 어찌 그것을 책으로 읽은 사람의 내적 성숙을 따라갈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제 이런 풍조도 한 구비를 넘겼는지, 이에 식상한 사람들의 시민의식·교양에의 탐구 같은 것이 점차 활자문화에의 관심회복이란 반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국민일반의 건실한 사고력 향상과 사회의 문학적 저력 증대를 위해 여간 흐뭇한 기풍이 아니다.
사실 활자문화나 독서를 통한 학습만큼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을 원리적·윤리적으로 순화·성숙시키는 수단은 따로 없을 것이다.
단편적이고 점적이며 얄팍한 소비형 인간이 아니라, 전인적이고 사색할 줄 알고 창조할 줄 아는 도의적 교양인을 형성하는 수신의 길은 역시 무어라 해도『책을 읽는 것』밖엔 없는 것이다.
책이야말로 인류지혜의 보고일 뿐 아니라 논리적 사고의 훈련, 그 자체를 가르쳐주는 『대치할 수 없는』교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미치고 있다는 독서기풍을 고급문화 부흥의 한 계기로 대망하면서 그 지속적인 확산을 기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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