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불안한 통화 팽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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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물가안정과 투기억제가 올해 경제의 최대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통화·재정·외환 운용이 더욱 세련되어야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연두순시에서 제시된 올해 재정·금융정책의 문제점들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본다. 【편집자주】
보도된 일련의 정부발표들을 종합해 보면 통화신용정책을 능동적으로 운용하고 금리정책은 탄력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라 한다.
또 수출증가에 중점을 두되 해외부문의 통화증발로 금융긴축의 주름살을 받았던 내수산업에 자금공급을 안정화하고 특히 중소기업 주택 및 서민금융을 대폭 확대한다는 것이다. 모두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통화신용의 안정기조를 견지하겠다고 한다. 말의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부가가치세 제도의 도입이란 평지풍파를 겪는 가운데 일반국민의 고양된 「인플레이션」예상률과는 정반대방향으로 금리인하가 두 차례에 걸쳐 있었다.
곧이어 연말연시에 저축성 예금 증가율의 둔화가 두드러지게 되자 실책을 시인하는 듯 일부 예금금리의 인상조치가 결정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번의 금리인상조치는 그간 일반국민의 신인도에서 빗나갔던 금융망국의 방향감각을 바로잡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세가지 문제점이 따른다. 첫째로 예금금리간의 역금리 관계가 부분적으로 재현되어 가뜩이나 비능률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금융기관의 운영을 더욱 왜곡되게 할 가능성을 높였다. 둘째로 작년 일부 국책은행에서 도입한 「저축금리」제도를 일반은행에 확대 적용하되 여기에 기존의 가계예금 어린이 예금 등을 통합하게되었다. 이 「저축예금」은 요구불 또는 저축성 예금의 양면성을 가진 것이나 공식적으로는 저축성 예금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최근에 크게 늘어났다고 하는 저축성 예금의 증가는 그대부분이 종전의 요구불 예금이었던 가계예금이 「저축예금」으로 바꿔진 결과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통화량계수의 분식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60년대 중반 동명의 예금으로 야기되던 연말통화량의 혼선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세째로는 금리수준 특히 대출금리의 문제다.
이번 인상조치에서도 대출금리는 신성불가침이었다. 은행차입 바로 그 자체가 하나의 수혜인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국제경쟁력의 약화가 우려된다는 주장만을 방패로 삼는 기업에 언제까지 비호를 베풀 것인가?
설사 국제경쟁력이 다소 약화되어-지금의 이용 가능액이 중요한 관심사인 상황에서는 공금리인상으로 기업의 평균차입비용은 오히려 감소될 수도 있다. 수출신장이 다소 둔화된들 그것이 그리 문제될 것인가? 모든 국민경제활동의 궁극적 목표가 국민생활의 복지향상에 있다면 수출은 그 종속된 수단에 불과하다. 때로는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도 지나친 수출「드라이브」정책은 무리다.
중동에서 「아파트」건설로 외화가 밀려와 국내통화가 늘어나고 물가가 오르면 무주택서민은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외화보유고 그 자체가 복지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필자를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오늘날의 어려운 금융문제를 혼자 파헤쳐 나갈 수는 없다. 중지를 모아야 한다. 【김병주<서강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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