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 터는 버핏, 속 타는 GM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미국 자동차의 상징이었던 제너럴모터스(GM)의 리콜 퍼레이드가 끝날 줄 모른다. GM은 20일(현지시간) ‘뷰익 엔클레이브’와 ‘쉐보레 트래버스’ 등 240만 대 이상을 추가 리콜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GM의 올해 리콜 건수는 29건이 됐다. 올 들어 4.8일 만에 1건씩 리콜이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GM의 올해 리콜 규모는 1540만 대로 불어났다. 이는 지난해 GM이 생산한 전체 자동차 대수의 1.5배에 달한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리콜 대상 모델에는 2009~2014년형 뷰익 엔클레이브와 쉐보레 트래버스, GMC 아카디아, 2009~2010년형 새턴 아웃룩스 등 약 134만 대가 포함됐다. 안전벨트 연결선 작동 결함 때문이다. 또 2004~2008년형 4륜 자동 쉐보레 말리부와 2005~2008년형 폰티액 G6 등 약 108만 대는 기어와 변속기 접합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이번 리콜엔 올해 나온 차종 일부까지 들어갔다. 2015년형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에스컬레이드 ESV 1402대가 조수석 에어백 문제가 발견돼 리콜 조치됐다. GM은 2015년형 에스컬레이드의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잇따른 리콜 행진에 투자자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1분기에 GM의 보유 지분을 4000만 주에서 3000만 주로 줄였다. 지난해 8월 크게 늘렸던 GM 주식을 1년도 안 돼 대거 처분한 것이다. 한 번 산 주식은 주가가 떨어져도 흔들리지 않고 쥐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버핏의 장기투자 성향을 감안하면 이번 처분은 이례적인 것으로 월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월가의 대표적 행동주의 투자자인 데이비드 아인혼이 이끄는 그린라이트캐피털은 보유했던 GM 주식 1700만 주(약 6억9700만 달러, 약 7150억원)를 모두 처분하고 GM을 떠났다.

주가는 연일 곤두박질하고 있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GM 주가는 전날 대비 3.45% 떨어진 33.07달러로 마감했다. 파산 후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기사회생한 뒤 뉴욕 증시에 재입성한 지난해 5월 21일 종가(33.4달러)보다 떨어진 것이다. 월가에선 투자자들이 GM 브랜드에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는 분석(S&P캐피털 아이큐의 에프라임 레비 선임 애널리스트)이 등장했다.

 GM의 리콜이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은 메리 배라 최고경영자(CEO)가 작심하고 GM의 차량 제조 과정 전반을 정밀점검하고 있기 때문이다. GM은 소형 차량들의 점화장치 불량을 알고도 10여 년이나 리콜을 늦추는 바람에 13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늑장 리콜에 대해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문제는 리콜 행진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월스트리저널(WSJ)에 따르면 GM의 한 대변인은 “차량들의 안전 문제를 계속 점검하고 있다. 리콜이 완전히 끝났다고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리콜은 이제 GM 차량의 안전 문제를 넘어 회사의 경영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심각해졌다. 2분기 현재 GM이 부담해야 할 리콜 관련 비용은 17억 달러(약 1조7400억원)를 넘어섰다. 최근 GM은 미국 교통당국으로부터 늑장 리콜에 대해 벌금 3500만 달러(약 359억원)를 부과받았다. 자동차 회사가 맞은 벌금액 중 최고이자 법정 상한액이다. 그러나 GM엔 더 큰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GM은 현재 미 법무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으로부터 별도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통상 법무부의 제재와 처벌은 훨씬 무겁다. 게다가 피해자 유족들은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추진 중이다. 미 정부와 의회 등의 조사 과정에서 GM이 결함을 알고도 리콜을 늦춰왔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유족들의 공세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앤서니 폭스 교통장관은 최근 GM이 점화장치 결함을 최소한 2009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GM이 내부 엔지니어들에게 ‘결함’이나 ‘안전’ 같은 단어 69개를 금기어로 제시해 의사소통을 가로막았음을 보여주는 내부자료도 공개됐다.

국내엔 리콜 대상 차량 없어

한편 국내에서 판매된 GM 차량 중엔 리콜 대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2008년형 쉐보레 말리부는 리콜 대상에 포함된 모델이지만 북미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에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한국GM은 “한국GM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말리부는 모두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라고 밝혔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역시 최신형인 2015년형만 리콜한다. 아직 국내에선 해당 모델이 공식 출시되지 않았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조혜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