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여생을 「꼭둑각시 놀음」전승에|대전의 예능 보유자 양도일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칠순의 할아버지가 시들어 가는 민속예능을 전승하기 위해 여생의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충남 대전시 은행동 163 무형문화재 3호 꼭두각시놀음 예능 보유자인 양도일씨(71)는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한달에 두번 이상씩 상경, 서울 마포구 망원동457의11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10여명의 제자들을 가르치고있다.
양씨는 남사당 여섯 마당 놀음 중 맨끝의 덜미(꼭둑각시놀음)의 예능보유자 3명 가운데 한 사람.
남사당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회 밑바닥에 흐르는 백성들의 욕구 불만을 해학적이고 저항적인 여섯 마당 놀음으로 달래주던 근대사회의 유랑극단과 비슷한 것이다.
여섯 마당 놀음은 풍물(농악) 버나(사발 돌리기) 어름(줄타기) 살만(땅재주) 덧뵈기(가면극) 덜미로 이어지며 꼭두(대강) 학주(기획) 뜬쇠(조강) 베리(대원) 가열(연습생) 등 50여명이 떼지어 다니며 공연, 서민들의 울분을 풀어주거나 흥취를 돋워 가는 곳마다 박수갈채를 받았다.
양씨의 꼭둑각시놀음은 속이 텅빈 나무로 인형을 만들어 옷을 입힌 뒤 텅빈 머리부분에 손가락을 넣어 대잡이(주조종자)가 막 뒤에서 인형을 부리며 막 앞의 산받이꾼(인형과의 대화자) 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이어진다.
양씨가 특히 즐기는 놀이는 이조 봉건사회의 폐습인 일부처첩(1부처첩)을 그린 박첨지놀음.
이 놀음은 박첨지가 팔도강산을 유람하는 모습, 박 첨지의 딸이 마을 뒷산의 상좌승과 놀아나다 쫓겨나는 모습, 손자·청노·노새 등을 잡아먹는 모습 등을 나타내 당시 서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던 것과 양반 계급의 타락상을 익살로 풍자하고 있다.
충남 대덕군 구칙면 문지리에서 대어난 양씨는 집안이 어려워 10세 때 아기 머슴으로 남의 집에 들어갔다 마을로 찾아온 남사당에 들어갔다는 것.
박첨지놀음의 사받이꾼 역부터 배우기 시작한 양씨는 이 놀음을 익히는데만 7년이나 수련을 쌓았다며 68년 꼭둑각시놀음으로 예능 보유자 지정을 받았다.
꼭둑각시놀음으로 일생을 살아온 양씨에게 재산이 있을 수 없어 문화재 관리국에서 지급하는 월 3만6천원의 보조금으로 부인 최봉순씨(69)와 함께 출가한 딸집에서 살고있다.
양씨는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땅재주 예능보유자 송복산씨(66)와 민속극회 남사당을 설립, 이수영씨(33) 등 10여명에게 전승하는데 온갖 정열을 다 바치고 있다. <대전=박상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