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유가족 ‘미행’이라니 … 참 나쁜 경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최동해 경기경찰청장이 세월호 유가족 미행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최 청장은 안산 단원경찰서가 유가족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정보형사를 배치한 데 대해 잘못을 시인했다. 유가족들은 “불법 사찰이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직후 벌어졌다. 정보보안과 소속 형사 2명이 안산에서 전남 진도로 가던 세월호 유가족 일행을 뒤따라가다 적발된 것이다. 국정책임자가 본격적인 수습에 나선 날, 경찰은 유가족의 분노를 유발하는 행위를 자초한 셈이다.

 최 청장은 “가족들이 이동하는 도중 안전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도움을 주려던 것이다. 직원들이 순간적으로 대처를 잘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으로 의문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 정보형사들은 신분을 숨기고 유가족을 뒤따랐다. 수상히 여긴 유족이 다그치자 “경찰이 아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도움을 주려고 했다고 하지만 무슨 도움인지 명확하지 않다. 안전문제라면 교통경찰이 나설 일이었다.

 수사·정보기관은 안보와 범죄단속 등 명백한 목적이 없으면 민간인을 뒷조사할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의 행동이 범죄나 안보 사안일 리 만무하다. 우리 사회에는 ‘불법사찰 트라우마’가 있다. 긴 독재 기간 중 경찰의 사찰로 인해 많은 국민이 육체적·심리적 상처를 입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총리실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뒷조사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번 경찰의 수상한 행동은 우리 사회에 잠재된 ‘상처’를 건드렸다.

 일부 시민단체와 야당은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우려해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사찰을 한 것”이라며 경찰을 맹비난했다. 경찰은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아직 ‘계획되고 조직적인 사찰’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정보를 손쉽게 수집하기 위해 미행을 하던 잘못된 관행이 도졌더라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경찰은 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내부조사를 하고 기강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