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는 브랜드, 펑펑 터트리는 이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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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골프의류 핑·팬텀·파리게이츠와 캐주얼 잭앤질 등 손대는 브랜드마다 성공시켜 온 우진석 대표는 2012년 자체 브랜드 ‘고커(Goker)’도 내놨다. 호피무늬 등 튀는 디자인의 골프화·가방 등을 만드는 브랜드다. [박종근 기자]

요즘 골프웨어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브랜드 중 하나는 ‘파리게이츠’다. 일본 패션그룹 ‘산에이 인터내셔널’이 만든 브랜드다. 산에이가 한국 지사를 설립해 2009년 국내에 선보였을 때만 해도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출시 2년이 넘도록 매장은 4개, 매출도 그저그랬다.

 ㈜크리스패션의 우진석(52) 대표가 2010년 말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이듬해 2월 운영을 시작하자 상황이 반전됐다. 매장 수는 현재 52개로 늘었고, 라이선스 첫해 50억원이었던 매출은 올해 500억원을 바라본다. 경기 침체로 골프 의류들의 매출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거둔 성과다. 기존 골프웨어보다 30% 비싼 가격에다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의류라 고속 성장에 더 눈길이 간다. 우 대표는 18일 “보통 시즌별로 신상품이 나오는 일반 골프 의류와는 달리 매월 신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디자인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엔 일본 산에이와 한국 크리스패션이 절반씩 투자해 홍콩에 디자인스튜디오도 만들었다. 홍콩·일본·한국에서 디자인한 제품들을 3개국에서 섞어 판매한다. 한국에서 디자인한 제품을 일본에서 파는 역수출도 점차 늘고 있다.

 캐주얼 ‘잭앤질’과 골프웨어 ‘팬텀’도 우 대표를 만나 살아난 브랜드다. 우 대표는 국동으로부터 캐주얼 브랜드 ‘잭앤질’을 2009년 8월 인수해 해외 SPA브랜드의 파상 공세속에서도 성장세로 돌려놨다. 한 때 국내 골프웨어의 산증인으로 불렸지만 브랜드가 노후화됐던 팬텀도 2008년 9월 상표권을 인수해 젊은 브랜드로 탈바꿈 시켰다. 인수당시 100억원에 불과했던 팬텀 매출은 지난해 500억원으로 늘었다. 우 대표는 “가격대비 품질 좋은 브랜드라는 팬텀의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 말 골프공 등 용품 상표권과 지적 재산권도 추가로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1999년부터 국내 라이센스를 맡고 있는 미국 브랜드 핑에 대한 투자도 늘렸다.

 손대는 브랜드마다 대박이 나는 비결 중 하나는 ‘젊은 디자인’이다. 우 대표는 “다른 회사에 가면 팀장급인 30대 중반 이하 젊은 인력들이 각 브랜드의 디자인 실장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력 대신 톡톡 튀는 개성을 보고 디자인을 맡긴다고 한다. 그는 “기능보다는 패션과 트렌드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능 싸움에선 대형 글로벌 업체들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다.

 브랜드 관리를 위해 세일 없이 정가 판매를 고집한다. 우 대표는 “과도한 세일은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적게 만들어 재고를 줄인다. 파리게이츠의 경우 10% 할인하는 브랜드데이 세일 행사를 1년에 하루 하며, 연예인에게도 직접 와서 살 경우 20% 할인해 주는 게 고작이다.

 우 대표의 패션사업 성공의 발판은 핑이었다. 외환위기의 한복판이던 98년 크리스패션을 세운 그는 이듬해 사업 계획서를 들고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핑의 라이선스권을 따냈다. 패션업계에 긴축·축소의 바람이 몰아치던 때라 주변의 반대가 컸다. 하지만 그해 국내에 출시한 핑은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해마다 매출이 늘었다. 지난해엔 미국 핑 솔트하임 회장이 아시아 마스터 라이선스권을 제안해 계약을 체결했다. 올 3월 중국 베이징 금원앤샤 백화점을 시작으로 톈진·청두 등에 총 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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