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위기에 빠졌던 레고, 움직이는 블록 조립식 내고 고객 참여 유도해 업계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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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장난감 산업은 성공하기 어려운 사업으로 꼽힌다. 금방 싫증을 내는 어린이를 상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지털 게임의 등장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블록 조립 장난감의 대표업체인 레고에 이런 얘기는 먼 나라 얘기다. 레고는 장난감 소비층을 성인으로 확대하고, 제품 기획과 개발에 사용자를 참여시키는 혁신으로 장난감 업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레고는 1932년 한 덴마크 목수로부터 탄생했다. 처음에는 다른 장난감 회사와 비슷한 목재 장난감을 만드는 그저 그런 회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58년 돌기를 이용해 블록끼리 결합시킬 수 있는 ‘스터드 앤드 튜브(Stud and Tube)’ 방식을 창안하면서 무한한 형태로 조립이 가능한 장난감을 탄생시켰다.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모습을 만들 수 있는 장난감을 최초로 도입한 퍼스트 펭귄이었던 것이다.

 이런 레고도 90년대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레고는 블록 조립에 ‘움직임’이란 혁신을 더해 위기를 극복했다. 98년 출시한 ‘마인드스톰’은 블록 조립 장난감에 모터와 컴퓨터 프로세서를 결합시켜 사용자가 다양한 형태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레고는 어린이 장난감이 아니라 어른도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변신했다. 레고에 열광하는 성인을 지칭하는 ‘AFOL(Adult Fan of Lego)’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사용자 참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3년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자가 자신이 원하는 장난감을 직접 디자인하고 주문할 수 있게 했다. 2008년엔 레고가 고객의 아이디어를 받고, 고객끼리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큐소’ 사이트도 만들었다. 큐소에서 인기를 끈 제품은 상용화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된 대표적인 제품이 최근 출시된 ‘백 투 더 퓨처’나 ‘마인 크래프트’ 시리즈다. 마인드스톰도 매니어 고객층 중 일부를 선발해 제품의 기획과 개발에 참여시키는 ‘마인드스톰 NXT’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등 꾸준히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의 결과로 만년 3위였던 레고는 2012년 보드게임 업체인 ‘하스브로’를 제치고 세계 장난감 업체 매출 2위로 부상했다. 순이익 면에서는 바비 인형을 만드는 세계 1위 장난감 기업 ‘마텔’을 넘어섰다. 장난감 업계의 퍼스트 펭귄으로서 레고가 앞으로 어떤 모습의 새로운 장난감과 놀이 방식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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