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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폴 매카트니, 한국 언론 첫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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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폴 매카트니가 최근 월드 투어 콘서트 ‘아웃데어’의 리허설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MJ Kim/MPL Communications]

1942년생 폴 매카트니는 지난해 새 앨범 ‘NEW’를 발표하고 월드 투어 ‘아웃데어(Out There!)’의 막을 올렸다. 지난해 5월부터 올 8월까지 이어지는 투어는 62번의 라이브공연으로 채워진다. 매 공연에서 그는 초대가수 없이 36~38곡을 홀로 부르고, 근 3시간 동안 결코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투어의 수입은 2억 달러(약 20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공연당 개런티는 현역 중 최고다. 폴은 여전히 최고의 현역임을 스스로 입증해내고 있다. 한국 언론과 그의 첫 인터뷰는 14일 전화로 이뤄졌다. 평화주의자 폴은 “휴전선 공연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며 남북관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 그간 한국 방문은 없었죠. 62년 첫 싱글 발표 후 52년을 기다린 한국 팬에게 인사 부탁합니다.

 “드디어 한국에 가게 됐습니다. 고대하는 팬들의 마음이 느껴져 더욱 설레고 흥분됩니다. 2주 후엔 만날 수 있겠군요.”

 - ‘10초 안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팝가수를 대라고 하면 85%가 비틀스를 말한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을 조사하면 ‘Yesterday’ ‘Hey Jude’ ‘Let It Be’가 꼽힙니다. 모두 당신의 곡이죠.

 “지금도 난 리버풀의 꼬마 같아요. 그저 좋아서 곡을 쓰기 시작했고 존(레넌)과 조지(해리슨)·링고(스타)를 만나게 됐죠. 그런데 어느새인가 세계적인 스타가 돼 있더군요.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사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내 음악을 사랑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그 감동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빌보드차트와 음악잡지 ‘롤링 스톤’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가수로 비틀스를 선정했다. 세기가 바뀌었지만 21세기에도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은 2000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The Beatles1’이다.

 - 프레디 머큐리(퀸), U2 등과 함께한 ‘라이브 에이드’(1985)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음악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세월호 여객선 사고를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한국 공연을 기다리는 중요한 이유는 한국 팬과 슬픔을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함께 슬퍼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는 데 나의 음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56년 14세 때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98년엔 부인 린다가 역시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폴은 음악을 통해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 살아 있는 자의 슬픔과 미안함이 음악만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요.

 “(지난 1월 2014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링고와 공연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존과 조지를 잃었다는 것, 그 친구들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건 링고와 나에겐 슬픈 일입니다. 우리의 단짝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더군요. 당신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지요. 다만 그들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기억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기억을 안고 당신의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우린 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당신의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것을 그들도 원할 겁니다.”

 - 작곡과 공연, 이 두 가지가 당신의 유산(legacy)이라고 말한 적이 있죠. 당신에게 라이브 공연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난했던 리버풀의 어린 시절 한 푼이 아쉬운 우리에게 정말이지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죠. 값어치를 못하는 공연은 사기입니다. 관객의 밤이 즐거워야 하고, 그 밤이 끝난 뒤에도 기억에 남는 공연이어야 합니다. 나를 믿고 돈과 가슴을 내어놓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 오직 그것만이 진실입니다.”

 - 콜로세움과 붉은 광장, 버킹엄과 백악관, 양키스타디움까지 역사적인 장소에서 공연을 이어왔습니다. 또 어떤 장소를 찾고 있죠.

 “한국을 포함해 아직 공연하지 못한 곳이 많아요. 저는 장소가 주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는 8월 캔들스틱파크(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을 여는 것도 장소가 의미있기 때문입니다. 그곳 팬들이 ‘경기장이 곧 없어지니 당신이 직접 이곳의 문을 닫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곳은 비틀스가 해체되기 전 마지막 라이브 공연을 한 장소죠(66년). ‘물론입니다’고 답했죠. 뭘 더 따지겠어요.”

 - 아웃데어의 컨셉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의 공연’인데요. 북한은 어떻습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내 공식 사진사가 한국인입니다. 그가 이런 제안을 했어요. ‘폴, 남한과 북한을 가로지르는 휴전선 바로 그 위에서 공연하는 건 어때?’”

 - 반전과 평화의 비틀스 노래가 비무장지대에 울려 퍼지는 건가요.

 “내 공연의 기획을 전담하는 이에게 ‘이 공연이 가능한지 알아보라’고 했죠. 한국인 친구가 제안한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 나도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이 아이디어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나는 하고 싶습니다. 거지 같은 정치 이념을 단번에 가로질러 남북의 경계선 그 바로 위에서 하는 콘서트! 곧 실현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 해체 이후 공식적으로 내놓은 앨범 수는 31장이다. 그 중 밴드 윙스의 앨범은 7장, 클래식 및 연주 앨범 7장, 일렉트로닉 앨범 5장이다.

 이스라엘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65년 비틀스의 입국을 불허했다. 그로부터 43년 후 2008년 폴의 이스라엘 공연이 성사됐고, 그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역설했다.

 - 70세를 한국에선 고희(古稀)라고 합니다. 인생을 되돌아보고 정리할 나이라는 게 보통의 생각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보이지 않네요.

 “젊은 시절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관객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무대를 즐기고 있습니다. (나이에 대한) 너무 많은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져 굳이 답을 찾아야 하나요.”

 - 지난해 앨범 ‘NEW’를 발표했습니다. 전작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요.

 “퇴보를 꿈꾸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거보다 나아지길 바라죠. 그런데 그 과거가 비틀스라면 어떻겠어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티스트로서 그런 도전을 즐기려고 해요. 좋은 동기부여가 됩니다.”

 - NEW에 수록된 ‘Early Days’는 존 레넌에 대한 노래인가요.

 “그 곡을 쓰던 날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리버풀에서 존과 공연하던 시절. 레코드숍에서 함께 로큰롤 음악을 들으며 벽에 걸린 포스터를 보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10월 런던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같은 질문을 받은 폴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추억은 좋은 겁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레코드숍에 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사이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죠. 그때마다 ‘너 그때 리버풀에 있었어?’라고 묻고 싶어요. 난 바로 거기에 존과 함께 있었죠.”

 - 한국 콘서트 예매가 시작된 지난달 8일 어떤 팬이 ‘50년 전인 64년 4월 8일 빌보드차트 1~5위가 모두 비틀스였다’는 글을 올렸더군요.

 “옛날얘기를 하니 우리 곡이 라디오에서 처음 흘러나올 때가 생각납니다. 차를 운전해 리버풀의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죠. 라디오에선 ‘Love Me Do(폴이 16세 때 만든 곡)’가 흘러나왔습니다. 차창을 내리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죠. ‘모두들 들어라! 이게 나야!’”

 비틀스는 64년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음반차트를 완전히 석권했다. 미국인들은 이를 가리켜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공습)’이라고 표현했다. ‘비틀매니어’라는 사상 초유의 팬덤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데 1년도 걸리지 않았다.

 - 위대한 곡을 수없이 만든 비결이 뭔가요. 어디서 영감을 얻죠.

 “기억과 향수는 좋은 곡의 원천입니다. 나와 존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리버풀의 작은 거리 ‘페니 레인’을 떠올리며 ‘Penny Lane’을 썼죠. 그리고 사랑을 하면 곡을 쓰게 되죠. 아, (통화하고 있는 지금) 여긴 런던인데요. 창밖에 보이는 연인이 꼭 끌어안고 있네요. 귀여운 젊은이들…. 저런 감정이 바로 곡의 원천이죠. 아이들은 노래를 만들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의 가장 큰 원동력은 작곡 자체를 즐기는 겁니다. 2시간 전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세상에 하나뿐인 노래가 탄생하죠. 짜릿하지 않나요?”

 NEW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새로운 여자를 만나면 곡을 쓰게 된다”고 쿨하게 말했다. 그는 2011년 지금의 부인 낸시와 결혼했고 이듬해 앨범을 발표했다.

 - 단 한 곡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겠습니까.

 “당신의 아이들 중 가장 사랑하는 아이는 몇째인가요? 그런 질문에 이렇게 받아치곤 합니다. ‘Yesterday’ ‘Hey Jude’ ‘Let It Be’ ‘All My Loving’ ‘Blackbird’ ‘Eleanor Rigby’…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강인식·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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