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무역 분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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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재 미·일간에 열리고 있는 통상 협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도 큰 관심사다. 우선, 만약 통상 협상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엔 미측의 경고대로 세계의 무역 질서에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미국이 실력행사밖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할 때 71년의 「닉슨·쇼크」 때와 같은 충격요법이 나올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사실 미국내에선 일본에 대해 과격한 조처도 불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내연하고 있다.
또 정치적·외교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카터」행정부로서도 대일 문제에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방향으로 몰리고 있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10월말로 2백억「달러」를 돌파했으며 연말까진 2백50억「달러」넘을 추세다.
일본 제품을 비롯한 값싼 외국 상품 때문에 미국의 실업 사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때문에 산업계나 노조로부터 보호 무역론이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0월말까지 69억「달러」의 경상 흑자를 기록했으며 연말까진 1백억「달러」에 이를 예상이다. 미국의 금년 대일 무역 적자는 약 70억「달러」로 전망되고 있다.
미일간의 무역 불균형 시정을 미국은 누차 일본에 요구해 왔으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더 벌어지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너무 성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엔」화 절상 압력을 강화, 「엔」화는 「달러」당 2백38「엔」까지 폭등했다. 연초보다 약20% 사실상 절상을 당한 것이다.
이번의 미일 통상 협상은 미국의 최후 통고란 인상이 짙다. 미국의 태도가 그만큼 고압적이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 일본의 경상수지가 균형되는 시기를 밝힐 것, 실효성 있는 수입 제한 철폐와 관세 인하를 단행할 것,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확실히 늘릴 것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단지 통상·외환면에서 무역 흑자를 줄이는 조처를 취하라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 정책 전반에 걸친 기조 변경을 강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약 미국의 주장대로 일본이 내년 경상수지를 적자로 바꾸려면 8%이상의 실질 성장을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미국은 일본이 총수요 확대책으로 성장율을 높여 미일 무역 불균형을 시정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세계 경기 회복에 기관차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대해 일본도 무역 흑자를 줄이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론엔 일단 양해했지만 그 규모와 시기에 대해선 상당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도 내년엔 경상수지가 아니라 기초수지에서 균형을 이룩하겠다는 뜻을 비쳤는데 그 차액은 50억「달러」가 넘는다. 미국은 획기적인 체질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해 일본은 여러 국내적 사정 때문에 기존 질서 안에서의 점진적 개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복전 수상은 대미 문제 등과 관련, 대폭적인 개각까지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일간엔 발상이나 접근 방법에 있어 워낙 큰 차이가 있으므로 만족스런 타결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일 무역 불균형은 단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갭」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 무역 협상의 타결이 늦을수록 일본에 대한 압력도 강화될 것이며 국제 무역 환경도 그 만큼 경화될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곤경은 역시 경제의 대내외 균형을 기할 수 있는 정책 조정의 미흡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의 경직화한 경제 체질과 발상 전환의 둔중에 배경을 두고 있다.
미일 무역 협상의 결과에 따라선 한국 경제도 직접·간접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이의 귀추를 주목하는 동시에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도 정책 기조에 대한 재점검을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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