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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검증, 백악관 3개월 청와대 3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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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민정수석실에서 일일이 검증합니까?”

 박근혜 정부 초기 장관 후보자들이 잇따라 낙마하는 인사 참사(慘事)가 이어지자 나온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후보자가 거짓으로 진술하면 확인할 방법도 없어요. 검찰처럼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했다. 공직자 인선과 검증에 대한 총체적 무능을 자인한 대목이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 장·차관급 후보자들이 줄사퇴했다. “최소 3명은 낙마시킨다”며 신상을 파헤치는 야당의 ‘정치 청문회’에도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론 인사 추천과 검증 과정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못한 탓도 크다. 실제로 적잖은 인사가 증여세 탈루, 해외 비자금 조성 같은 문제로 낙마했다. 검증 시스템만 잘 작동했다면 사전에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던 사안이다.

 한때 입각설이 나돌았던 한 의원은 14일 “청와대로부터 개인정보 조회 동의요청서를 쓰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3일 뒤 A씨가 장관 후보자로 발표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입각자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면 모를까 어떻게 3일 만에 도덕성과 성품·평판도를 다 조사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부실한 인사 검증이 되풀이되는 근본적 원인은 인사 비밀주의라는 낙후된 관행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선임국장을 지낸 이상휘 세명대 교수는 “300문항에 달하는 자기평가 설문의 검증에만 최소 보름이 필요하다”며 “관련 정부기관이 총동원되는 미국에서도 최소 3개월이 걸리는 검증을 사흘 만에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실 있는 검증이 이뤄지려면 몇 사람에 의해 비밀리에 이뤄지는 인사가 아닌 시스템 인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고위 공직자의 추천과 검증 과정이 모두 비밀 군사작전 하듯이 불투명하게 진행되는 게 문제”라며 “언론에 깜짝쇼를 하듯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발표하는 것보다 언론 등 여러 가지 사회적 검증 시스템을 통해 여론과 평판도 등을 검증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한된 인력이 시간에 쫓겨 겉핥기식 검증에 그치는 낙후된 시스템도 문제다. 공직 후보자의 인사 검증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한다. 현재 인원은 검찰·국세청·경찰·국정원 등에서 파견된 15명이 전부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공직기강실(11명)과 감찰2팀(10명) 등 21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후보자의 재산 형성과 탈세·병역 등 사전 검증→도덕성 검증→평판조회 등을 책임진다. 그것도 며칠에 불과한 짧은 기간에 끝내야 한다.

 청와대가 검증 결과를 놓고 야당과 소통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반드시 필요한 인사라면 청와대가 차라리 야당에 처음부터 솔직히 협조를 구하는 등의 소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청와대가 중요한 자료를 미리 검증하고 충분히 검토한 뒤 야당에 인사 검증 결과를 제시하는 등의 사전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태화·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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