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체력장제도를 고집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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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체력장 검사에 따른 학생들의 희생사태를 언제까지 이대로 보고만 있을 작정인가.
지난 9일 서울 Y여중에서 시작된 체력장사고는 마침내 전국으로 확대돼 부산과 이리·청원에서도 각각 한 명씩 3명이 절명하고 전주에서는 16명의 여학생이 졸도하는 등 연쇄참사를 빚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앞으로 남은 고교 및 대학입시 체력장검사 때까지 또 무슨 변이 얼마나 계속해서 일어날지 학부모들과 국민 모두가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현재의 체력장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여 체력장검사를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는 당국의 결정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항 인식이 너무나 부족한 것 같다.
그 반증으로는 체력장검사로 인한 학생들의 희생은 결코 작금에 처음 발생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찍부터 전국 곳곳에서 연습 뒤에 학생들이 쓰러지고, 숨지는 사고가 비일비재했었다는 현실을 앞에 두고서는 평소부터의 체육교육이 부재했기 때문이라느니, 검사실시 전 준비운동이 모자랐기 때문이라느니 하는 식의 장황한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그 같은 설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입시와 직결된 체력장제도가 그대로 존속하는 한, 희생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모범적인 체육교과를 운영하고 충분할 준비운동을 시킨 학교에 있어서도 역시 사고가 발생하고 전국적으로도 사고의 빈도가 날아 갈수록 잦아지고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음에서야.
물론 이론상으로는 현재의 기준이 반드시 무리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부인치 않는다. 선진국의 예도 있는 줄 안다.
그렇지만 실제로 당장 우리 눈앞에서 이 때문에 목숨을 잃고 졸도하는 사태가 염연히 거듭되고 있는 이상 이 에누리없는 우리의 현실을 토대로 한 체력장기준의 재검토는 회피할 수 없는 당연한 요청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백가지 이론보다 실제로 나타나는 한가지 사실이 언제나 우리에게는 더 값지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제도가 요구하는 기준은 문제된 오래달리기 종목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1백m 달리기도 남자가 12초7, 여자가 15초l을 달려야 만점을 얻을 수 있다. 국가대표 급 축구선수들의 주력이 12초대인 것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기준이 어찌 무리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만점기준이 이렇듯 높은데다 진학시험에서 체력장검사 성적이 차지하는 비율도 고교입시에서는 총2백 점의 10%인 20점, 대학입시에서는 예비고사 총점 3백40점 중 20점(5·9%)으로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 1점이 아쉬운 수험생들로서는 조금이라도 점수를 더 따려고 안간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제도 자체가 이렇게 사고를 유발하게끔 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다 평소에는 주입식 학교교육에만 치중하다 체력장검사를 앞두고 2∼3개월 동안 체력장검사 8개 종목 훈련에 열을 올리는 중-고교의 교육실태가 사고요인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할 때 체력장검사는 현재처럼 상한선을 정하는 점수제가 아니라 일정한 기본체력「테스트」만으로 그치는 자격제로 전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체력장제도를 입시와 분리시키는데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학생들의 체력향상을 위해서는 본 난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체육과목에 다른 유인을 제공하여 누구 나가 평소에 체육교육에 역점을 두도록 권장하고, 입시를 위해 마지못해 몇 가지 종목만을 익히는 폐단은 원천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체력장을 입시와 직결시켜 어린 학생들에게, 강박관념을 심어 주고 거기다 귀중한 인명까지 희생시키는 것은 오히려 국민체력향상과도 역행되는 비교육적 처사임을 인식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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