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마르크작 「개선문」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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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1윌의 늦은밤, 축축한 냉기속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리」「센」강의 한 다리(교)위에 서 있던 「라비크」는 비틀거리며 그 옆으로 다가오는 어떤 여자의 손을 잡는다.
『어딜 가려는 거요? 이 밤중에 혼자서, 더우기 「파리」의 이런 시간에…』
핏기가 가신 창백하고 거의 표정이라고는 없는 얼굴. 탐스러우나 윤곽이 흐린 입, 윤기가 흐르는 금기에 「베레」모. 그 여인은 「루마니아」출신의 가수 「조안· 마두」.
왕년에 「베를린」의 큰 종합병원 외과과장이었던 「라비코」는 「나치」 독일을 탈출, 「프랑스」로 망명해 온 피난민이었다. 「에리히· 마리아·레마르크」(1898∼1970년)의 소제『개선문』은 제2차대전의 암운이 감도는 「파리」를 무대로「라비크」와「조안」,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에트왈르」광장I. 바로 개선문이 있는 곳이다.
7윌의 늦은밤, 그「에트왈은 광장의 개선문은 휘황한 「서치라이트」속에서 고고한 모습으로 서있다. 새벽2시. 이 광장을 겹겹이 둘러싼 「카페」들은 그러나 시간이 따로 없었다.「카페」마다 자욱한 담배연기와 술잔이 부닥치는 소리, 현광동의 불빛.
소설속의 「라비크」와 「조안」은 초면에 이런 「카페」를 찾았었다. 「택시」운전사들이 그 지독한 화주 「아브상」을 마시곤있는 「카페」에서 이들은 「칼바도스」를 2잔, 다시 2잔 시켜서 들이켰다. 콕 찌르는, 하지만 부드럽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겨주는 사과술.
「마로니에」가 무성한 가로의「벤치」에는 지금도 필경 「라비크」와 「조안」같은 무리들이 고독을 음미하는 듯, 혹은 포옹하며, 혹은 무료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라비크」는 「파리」의 뒷골목에서 창부들의 기진이나 해주는 마분하고 악몽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밤이면 잠을 이루지못해 뒤척거리기가 일쑤였다. 「조안」을 만난 것도 그런 밤이었다. 「조안」 역시 고독에 짓눌려 자살을 기도했던 여자.
모두 조국을 잃고, 또 버린 망명객들로 인정에 굶주려 있었다.
작가 「레마르크」는 독일태생으로 그 자신이 전쟁의 참화,「나치즘」속에서의 고초, 망명생활의 처참한 체험을 겪었었다. 그는 끝내 「미국시민권」을 얻어 망명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의 처녀작 『서부전선 이상없다』나 대표작『개선문』등을 말하자면 역사적인 비초의 시대에 살고있는 이 세상의 이름없는 인간들이 「이데올로기」의 제물이 되어 얼마나 무서운 수난을 겪고 있는가를 증언하는 「르포르타지」문학의 금자탑들이다.
오늘의 「마러」에는 문밖 인구까지 치면 1천만명의 시민이 살고 있다. 이가운데 외국인온 비공식집계에 따르면 무려 1백만명도 넘는다. 「파리」는 예나 이제나, 「유럽」, 아니 전세계 망명객들의 천국이 되고있는 것이다. 「라비크」는 무단망명자임이 밝혀져 끝내 「파리」에서 추방되고 말지만 오늘의「라비크」들은 그런대로 눌러 살고 있다. 파렵치법이 아닌한,「프랑스」정부도 구태여 쫓아낼 생각을 하고 있지않다.
그 중에서도 제정「러시아」의 백계회인들은 지금도 그들만의 소사회를 이루고 「러시아」에의 봉수회 되개기며「에트왈르」고장을 서성거린다. 이들「러시아」망명객들이 밤마다 모여「볼가」강의 뱃노래를 목청껏 불러대는 술집은 아직도 있다. 『모스크바』란 「카바례」. 소련의 이른바 반체제작가들, 가령「솔제니친」(재소숭이던)의 『목용소군도』와 같은 작품을 비밀리에, 소련에서 반출, 출간하는 것도 이등 백계인물이 하는 일이다.
인지우도의 적화이후인 다시금 「배트남」「캄보디아」「라오스」등에서 피난온 사람들로「파리」의 망명객은 더욱 불어났다. 무려 3만1천여명. 여자들은 식당종업원으로, 남자들은 수위· 주차장 수금원·식당종업원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아직 시민권은 얻지못해 다만 「제네바」협정에 의한, 여행증명서만으로 불법거주자의 신세는 면하고 있다. 다행히 「프랑스」정부는 이들의 취업을 도와주는 입장이어서 망국시민의 아픈 마음에도 한줄기 빛은 있다.
41세의 「베트남」 피난민「방탑」씨. 아내도, 아이들도 다 버리고(?) 「파리」의 유랑객이 된 그는 『고국이 다시금 과거를 찾을 날은 없을 것이다』는 절망속에서 식당종업원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망국인들의 서글픈 풍석을 언제나 보아온 「파리지앵」들은 개선문에 새겨진「프랑스」의 영광도 이젠 퇴색한 듯 평화를 입버릇처럼 왼다. 34세의 출판사원 「주스랑」은 말한다. 『전쟁온 무조건 싫어요. 어떤「이데올로기」라도 전쟁보다는 낫지요. 왜 죽고, 왜 죽여야 하는지를 모르는 전쟁은 무슨 명분으로도 미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트왈르」광장의 「카페」에선 지금도「칼바드스」주를 판다. 「라비크」와 같은 청년,「조안」과 같은 「센티멘털리스트」들은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여기서 「칼바도스」 를 찾고 있을 것이다. 전운이 이 지구의 하늘에서 사라질 날은 영원히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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