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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좋은 게 좋다"는 서울시의 관피아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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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일구
강일구 기자 중앙일보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강일구]
강기헌
사회부문 기자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직후 이 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사장들의 전직을 살펴보니 3명 중 두 명이 서울시 간부 출신이었다. 본지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메트로 역대 CEO 15명 중 10명이 서울시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본지 5월 8일자 2면)했다. 이에 대한 서울시의 대응은 신속했고 태도도 당당했다.

 “서울메트로 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의 엄정한 심사 추천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격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임명하고 있음. 이 중 서울시 부시장으로서 사장을 겸직한 사람은 4명임.”

 전문성을 갖춘 서울시 교통관료가 메트로 사장을 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장정우 현 서울메트로 사장은 교통국장·도시교통본부장을 거치긴 했다. 하지만 도시교통본부엔 버스정책·택시물류과 등 8개 과가 있을 뿐 지하철을 총괄하는 별도 조직이 없다. 또 장 사장은 한창 일할 때인 4급 서기관 시절, 예산·인사 파트에서 주로 근무했다. 그러다 2012년 말 퇴직할 때는 시의회 사무처장이었다.

 더 큰 문제는 1981년 제1대 김재명 사장 취임 이래 내부 인사가 사장으로 승진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직원으로 입사해 현장을 지키며 살아온 지하철 전문가들이 소외돼 왔다는 얘기다. 내부에서조차 “서울메트로 사장은 서울시 고위 공무원들의 낙하산 자리”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다.

 엄정한 심사 추천 대목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감사원은 2011년 전국의 지하철 공기업에 대한 경영 감사를 벌인 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잘못을 콕 집어서 지적했다. “임원추천위원회로부터 사장 후보를 추천받지 않아 사장으로 임명될 자격이 없는 행정2부시장 등을 사장으로 임명한 건 잘못”이라는 거였다.

 서울시는 부시장을 서울메트로 사장으로 겸임 발령한 이유에 대해 “행정공백 최소화를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행 지방공기업법상 지자체는 지방 공기업의 지도 및 권고를 할 수 있고 공사의 업무 및 회계·재산에 관한 전반을 검사하거나 관련 보고를 받을 수 있다. 굳이 겸임 발령을 안 내도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부 간부들의 경력 관리용이라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 관피아 논란의 핵심은 방만 경영이다. 지난해 서울메트로 부채는 3조3000억원에 이른다. 서울메트로는 10년 넘게 퇴직금누진제를 고수하느라 퇴직금 단수제에 비해 258억원을 더 썼다. 법에도 없는 취업규칙까지 만들어 306억원의 연차보상금을 정부 기준보다 더 주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관피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강기헌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