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사과는 유연하고 진중하면서 국민 안심시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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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호 06면

“철저히 조사하고 원인을 규명해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하겠다.”(4월 17일, 진도 팽목항)

바람직한 대통령의 언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4월 21일, 수석비서관 회의)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4월 29일, 국무회의)

“잘못된 적폐들을 바로잡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4월 29일,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참배 후)

“유가족들께 무엇이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죄송스럽다.”(5월 6일,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왜 진정성 면에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걸까. 단순히 정치적 입장이 달라 비판하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사과의 시기나 내용·형식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임동욱(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부소장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수사가 유독 취약한데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박 대통령의 수사는 여러모로 부적절한 면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임 부소장은 “민주주의 선진국의 리더들은 유연하면서도 진중하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수사를 고민한다”며 박 대통령의 언어에 대해 조목조목 분석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사용한 ‘적폐(積弊)’란 단어는 본인의 진심과 상관없이 과거 정권에 책임을 미루는 듯한 인상을 준다”며 “‘뭐라고 사죄를 해야 할지…’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같은 표현도 영어의 ‘too~ to’(너무 ~해 ~할 수 없다) 용법을 번역한 것처럼 어색하다”고 말했다. 임 부소장은 “직접적으로 ‘사과한다’거나 ‘위로한다’는 국어 어법에 맞는 표현을 사용해야 국민들에게 와닿는 사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임 부소장은 “영국 옥스퍼드대 템플턴칼리지에 걸려 있는 ‘불완전한 개인이 만나 완벽한 팀을 이룬다’는 구호처럼, 대통령의 참모들은 대통령의 수사를 완성해줘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참모들은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사람들이 겪지 못한 참혹한 일을 일찍 겪어서 그런 건지, 오랜 청와대 생활 때문인지 몰라도 대통령의 부족함을 채워줄 팀을 구성하지 못했다”며 “‘받아쓰기 부대’만 곁에 두는 것은 큰 패착”이라고 덧붙였다.

수사학 전문가인 성균관대 이상철(커뮤니케이션학) 교수도 “리더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적폐’란 표현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초상집에 가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처럼 ‘과거로부터 잘못됐지만 우리 잘못이 가장 크다’고 말하는 것이 적합한 수사적 상황”이라며 “최소한 팽목항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에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대통령의 언어’가 나왔어야 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박 대통령에게 남은 기회는 추도사뿐”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세계적인 명연설들은 모두 추도사에서 나왔다. 펠로폰네소스 전사자들을 기린 페리클레스의 연설, 그리고 이를 인용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그렇다”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통령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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