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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해야할 국가동원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가보위법 제5조에는 비상사태 하에서 국방상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동원령을 발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그동안 동원대상 지역내의 토지의 수용·사용에 관한 특별 조치령과 자원운영 등에 관한 규정 및 그 시행규칙을 재정 중에 있다.
그 중에서도 관심을 끄는 건 전반적인 인적, 물적자원의 동원과 통제운영을 위한 자원운영 등에 관한 규정과 그 시행규칙이다. 인적·물적자원의 동원과 통제운영 등 그 규제범위가 일반적이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우선 인적동원의 경우 17세 이상 50세 이하의 모든 남자와 17세 이상 60세까지의 과학기술자·면허 및 자격소지자·예술인 등이 대상자로 되어 있다. 물적동원 대상으로는 직·간접으로 군수 및 재해복구에 공여될 수 있는 모든 물자와 권리, 그리고 생산업체가 들어있으며 신문·방송·영화·연예·인쇄 등 대량통신수단도 모두 동원통제를 받게되어 있다.
일단 동원 통제대상이 된 인원·물자·업체는 완전히 동원목적에 따른 통제를 받는다.
그 경우 효율적인 조직과 통제만이 문제이지, 국민의 제반권리 같은 것은 그 다음 고려사항에 불과하다. 보통 같으면 민주국가에서 이러한 국민의 권리에 대한 광범한 통제와 제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비상사태 중에서도 전쟁·사변 같은 초비상사태 하에 국가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동원해야 할 급박한 상황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가보위법 5조나 자원운영규정 및 그 시행규칙도 물론 그러한 특별한 상황을 발동의 전제로 하고있다. 비상사태라도 국방상의 목적을 위해 국가동원령이 발해진 경우에만 예정된 동원 및 통제가 가능하도록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전제가 되는 국가동원령의 발동요건이 꼭 엄밀하게 제한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게는 보기 어렵다. 법문만으로는 71년12월6일 이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어있으므로 국방상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국가동원령 발동을 막을 조건은 없다.
물론 그런 제약조건이 없어도 정부는 그간 이 법조항의 운영에 자제와 신중성을 발휘했다. 이러한 신중성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할 것이다.
더욱이 대상지역이나 동원객체가 한정되지 않은 전국적이고 일반적인 국가동원령의 발동은 그야말로 전쟁이 아닌 한 꼭 자제되었으면 한다. 국민생활에 미치는 제약이 너무나 심각하게 되어있을 뿐더러 이미 통용되고있는 다른 법률과 광범하게 중복되기 때문이다.
우선 인적동원의 경우 그 대상이 민방위대조직 대상과 거의 중복된다. 두 법체계의 목적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로되 전쟁 같은 사태가 아닌 한 민방위 기본법만으로도 인적동원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또 정부가 방위산업을 통제하고 필요한 물자를 비축할 수만 있다면 전쟁이 아닌 바에야 그 이상의 물적 동원이 필요할 까닭도 없지 않겠는가.
요컨대 자원운영규정과 이에 따른 시행규칙들은 전쟁과 같은 초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법규로서만 존재의의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하겠다.
사실 법적으로도 아무런 대비 없이 6·25를 당해 황망 중에 부랴부랴 긴급명령을 발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런 면의 대비도 소홀히 해선 안될 대목이다. 다만 그러한 비상법규의 실제발동만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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