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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한류 열었다 … 기존 가치 넘어 새 비전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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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진석(46)씨는 큐레이터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부터 줄기차게 미술기획자로 일해 왔다. 전시 개념을 잡고 작가를 모아 적절한 공간과 시간 속에 작품과 콘텐트를 배치해 종합무대로 만드는 큐레이팅(curating)을 그는 ‘창작’이라고 부른다.

 “20세기 초 서양미술은 피카소나 달리 같은 스타 작가가 이끌었죠. 50년대를 넘어서며 큐레이터가 중심이 됩니다. 흔히 학예연구사로 번역되는 큐레이터가 미술관·화랑·비엔날레 등을 근거로 서양미술사를 장식했어요. 20세기 후반엔 막강한 재력과 금융 권력을 지닌 개인 컬렉터들이 미술사를 쥐락펴락 했죠. 최근 들어 예술의 공적 가치를 중시하는 물결이 일면서 다시 큐레이터 정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기회죠. 역사가 짧고 재화가 부족한 한국 미술이 한번 치고 나갈 때가 온 겁니다.”

 서씨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한국을 축으로 한 아시아 미술의 가능성을 개척해왔다. 2004년 비디오아트 페스티벌 ‘무브 온 아시아(Move on Asia)’를 기획해 160여 명 아시아 작가를 이끌고 전 세계 순회전시를 하고 있다.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의 고향 한국이 서구 에 앞서 있는 비디오아트로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2006년에는 ‘미디어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을 조직해 독일 ZKM, 영국 Fact 등과 나란히 21세기 미디어아트에 대한 다양한 시각 이미지와 생각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해외 유명 큐레이터나 전시장 대표가 서울에 오면 꼭 대안공간 루프와 서씨를 찾는 까닭이다.

 “대안공간을 처음 시작할 때는 국·공립 전시장과 사립 화랑이 거둘 수 없는 재능 넘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15년쯤 지나니 그들이 한국 미술을 걸머진 중진이 됐더군요. 한 식구처럼 지내며 저평가된 우리 미술을 세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데 뜻을 모으고 있어요. 국제미술계 눈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한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5년 내 우리 미술이 뜰 텐데 미술인들 모두가 그런 흐름을 직시하고 힘 모아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서씨는 요즘 미술계에 쏟아지는 각종 지원제도가 좀 더 계획성 있게 집중됐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해외 연수나 작업공간 제공보다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때 전기료를 못내 촛불을 켜놓고 전시회를 열던 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때 짜장면 배달 왔던 중국집 주인이 철가방을 내려놓고 그림을 보더니 좋다고 후원금을 놓고 갔어요. 대중과 소통하는 힘을 느꼈죠. 유명 평론가 비평보다 그런 분들 한마디가 오늘까지 저를 밀고 온 셈이죠.”

 상금 5000만원은 그에게 가뭄에 단비일 텐데 벌써 쓸 곳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지난번 전시회 때 지불하지 못한 모든 지출 처리 일자를 9일로 잡아놨어요. 짜장면 집에도 들러 한턱내려고요.”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진석=1968년 서울 출생 ▶경원대 응용미술과 졸업 ▶미국 시카고 미술대학원, 필라델피아 텍스타일 과학대학 디자인과 수학 ▶2004년 비디오아트 페스티벌 ‘무브 온 아시아(Move on Asia)’ 기획 전 세계 순회 전시 ▶ 2010년 ‘A3 아시아현대미술상’과 ‘아시아아트포럼’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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