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윤병노(성대교수·문학평론가), 강용준(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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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윤=최근의 한국소설계는 전에 볼 수 없이 호황을 맞고있는 것 같아요. 고료 인상이라든가 발표지면이 많아졌다든가 하는 것이 그 원인의 하나겠지요. 그러나 깜짝 놀랄만한 대작이나 걸작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알맹이 없는 호황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강=작가의 자세에 문제가 있겠지요. 작가라면 누구나 그 나름의 목소리와 「스타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개성이라고 하는 것이겠는데, 이것이 없을 때는 작가로서의 기본적 지반이 약해서 쉽게 흔들리게 되지요. 모든 작가가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독자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니 개성이 약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윤=값싼 유행작가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성실한 문학정신이 필요하겠지요.
이 달의 소설가운데서는 실향민의 향수에서 유발되는 농도 짙은 인정애화들을 관심 있게 읽었는데요. 최현식씨의 『세천교』(현대문학) 강 선생의 『고향사람·2』(문학사상) 등이 그것이지요. 『세천교』는 잃어버린 수석「먼산」을 되찾기 위한 세천교 답사에서 분단국의 비애를 재확인한다는 것이며, 『고향사람·2』는 2명의 선량한 실향민들이 애타게 회구하는 것이 이 땅의 영원한 평화와 안전이지만 그들의 정착은 쉽게 이룩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최씨나 강 선생은 모두 6·25를 체험한 실향의 전후작가로서 향수의 실감이 더욱 절실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강=저도 눈여겨본 몇 작품이 있는데요. 우선 김병총씨의 『안개사람』(문학사상)부터 이야기하지요. 이 작품 자체로서는 소품에 불과하지만 이 작가가 작년에 발표한 중편 『불칼』을 염두에 둘 때 주목할만한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하면서 아까 제가 말한 작가의 목소리와 「스타일」을 아주 선명하게 부각시켜주고 있어요. 대화를 이끌어 가는 솜씨도 만만치 않구요.
윤=정을병씨의 『허상 속에서』(한국문학) 에서는 매우 이색적인 화제가 다루어지고 있더군요. 심령과학의 이름으로 만병을 다스린다는 괴이한 세계를 탐색한 작품인데요. 심령과학이 어떤 복음보다도 더 굉장한 위력으로 전파되고있는 현실을 소상하게 추적해간 작가의 날카로운 관찰에 감탄했습니다.
강=정연희씨의 『천치』(현대문학)는 「체흡」의 『귀여운 여인』을 상기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거의 관념적인 이 작품은 그 「톤」이며 색채며 발성법에 있어서 『귀여운 여인』과는 이질적이고 주제도 달라요. 그런데도 「체흡」을 느끼게 되는 까닭은 주인공의 소박하고 진솔한 성격의 유사성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해요.
윤=백시종씨의 『바다의 함정』(월간중앙) 도 이색적인 화제로 흥미를 끌지만 읽고 난 뒤의 느낌을 우울하게 하는 비화였습니다.
외항선에 잠입한 한 소년의 수난기가 매우 박력 있게 그려진 작품인데 선장부재 중 도벽이 발작되어 수습할 수 없는 함정에 빠진다는 귀결이 뒷맛 쓰게 남아요.
강=이밖에 유려한 문장과 풍부한 화술로 사회윤리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유재용씨의『파수꾼』(현대문학) , 가난한 20대 지식청년의 애환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부각되는 이광복씨의 『숨쉬는 벽』(현대문학)등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 『숨쉬는 벽』은 사소설류의 작품으로 진한 느낌을 주고있는데 아마도 신인인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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