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자위대 증강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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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예측했던 대로 주한 미 지상군철수와 관련해 일본일각에서는 자위대 증강론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주한미군 철수로 4차 방위기본계획의 전제였던 「아시아」정세가 변하게 되었으니 기본방위계획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일본군부의 주장이 실제로 어떻게 현실화될는지는 일본의 정정으로 보아 속단키 어려운 일이다.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라서 자위대 측의 우려가 그대로 정책으로 채택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우선 국내적으로도 일본은 군사력을 늘리는데는 제약이 많다. 전쟁을 포기한 일본의 평화헌법체제, 좌익의 거센 반대, 그리고 일반국민의 반 군국주의「알레르기」등이 그것이다. 일본의 국방비가 여지껏 국민총생산(GNP) 의 1%를 넘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국내적 제약조건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위대의 대폭 증강은 국내정치세력의 양극화와 정치불안의 심화를 무릅쓰지 않고는 불가능한 형편이다.
일본의 군사력증강은 국내불안 못지 않게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파문을 야기하게 될 문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자위대의 제한된 증강은 오히려 바라는 바다. 실제로 미국은 수년 전부터 일본이 해·공군력, 특히 대잠능력을 증강해 이 지역에서 소련과 해상세력을 견제해주길 요망해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방위력증강이 제한적이라는 전제가 붙는 얘기다. 일본이 그 한계를 넘어 동「아시아」에서 독자적인 군사대국으로 부상하는 건 미국도 극력 피하고자하는 사태다. 미·일 안보조약을 기초로 한 미국의 동 「아시아」전략의 틀 자체에 위협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일본의 군사력증강은 소·중공의 불안으로 직결된다.
미국과는 달리 제한적이든, 전면적이든 일본의 군사력증강은 소·중공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며 자연히 마찰을 증대시킬 요인으로 경계되고 있다.
말하기 좋아 4도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지역의 군사정세는 미·소·중공의 3강 체제다. 일본은 잠재적인 요소로 미국의 틀 속에 매몰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본의 잠재력이 현재화하게될 경우 이 지역의 세력균형은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사태는 한반도의 안정이란 견지에서 볼 때 또 한가지의 새로운 교란요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미·일의 삼각협력관계의 틀이 건재하고 일본의 방위력 증강이 한정적인 한 우리가 당장 위협을 느낄 필요는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몇 가지 전제가 장기적으로 지탱되기 어려운 한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란 사태발전은 마땅히 경계되어야 하겠다.
주한미군철수가 일본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 경우엔 일본이 군사대국화나 좌경적 중립화의 길로 치달을지 모른다던 그동안의 경고나 예측이 결코 공허한 가세만은 아니었음이 이제 조급한 자위대 증강론으로 뒷받침된 셈이다.
주한미군철수가 가져올 심대한 파급효과에 대해 특히 미국 정부정책 수립가들의 심사숙고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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