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본령 저버린 선거기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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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종로-중구의 보궐선거는 주역이라 할 공화·신민·통일당 등 각 정당이 모조리 불참 또는 불참할 기세로 있어 전례 없이 무소속 후보들만의 기형의 선거가 될 전망이다.
각 당의 불참으로 인해 당초 보선이 가졌던 여러 가지 정치적 의미-즉 78년의 대통령선거, 79년2월 이내 실시될 10대의원총선거에 앞선 예비선거라는 성격, 또는 유신체제에 대한최초의 민심측정의 기회라는 성격 등-는 무산되고 오르지 궐원2석을 채운다는 사무적 요식 절차가 되고 마는 셈이다.
상당기간 예고돼온 당의 불참과는 달리 23일 하오 돌연 긴급당무회의를 소집하면서까지 불참을 결정한 공화당의 태도는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많은 당 간부들이 23일 상오까지도 불참론을 완강히 부인, 또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고 당무회의 예정도 처음엔 24일 이후로 잡고 있었다는 점, 선거일자 결정에도 정부측과 협의를 가졌다는 점 등 그 동안의 여러 가지 사정을 보면 공화당의 갑작스런 불참은 자발적이 아닌 다분히 타율적인 상황변화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감이 짙다.
정부·여당으로서는 미군철수문제, 우방일부의 인권시비 등 어려운 상황에서 들추고 싶지 않은 각종 정치「이슈」가 쏟아질 보선에 나선다는 자체가 달갑잖은 일인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진작 불참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은 불참이 자신감의 결여로 연결될 공산이 컸기 때문인데 때마침 신민당이 먼저 불참 논을 제기, 공화당으로서는 자신감결여의 인상을 줌이 없이 불참을 결정할 수 있게된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으로서는 정일형씨에 대한「의리」, 긴급조치와 선거법의 제약 등을 불참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지지도에 대한 위험부담을 피하고 안전운행을 도모하려는 당 주류의 계산도 작용했음직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보선의 정치성은 극소화 됐고, 이 결과는 보선의 정치성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정부·여당의·입장에서는 다행스런 일일 수밖에 없으며 신민당으로서는 본의든 아니든 이 결과에 동참한 셈이다.
그러나 모처럼의 민의를 묻는 기회가 선거를 통한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에 의해 회피되는 현실은 우러나라 경치에서 정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보여 주는 예가 아닐 수 없고 한마디로 불행한 사태다. 명분이야 어떻든 정당의 선거기피현상은 규탄 받아 마땅하다. <송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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