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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한 끼 2만원짜리까지 … 구내식당 최강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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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엄마가 해준 밥보다 급식업체가 해준 밥을 더 많이 먹었을걸요.”

 직장인 유정일(29)씨는 스스로를 ‘급식인생 20년’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급식을 시작한 이후로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식당을 거쳐 회사원이 된 지금까지 일주일에 다섯 끼는 단체 급식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야근이 잦고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한 끼 식사는 중요한 쉼표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는 학창시절과는 달리 직장에서 제공하는 급식은 입맛에 맞지 않거나 비싸면 외면받기 십상이다. 군대시절 ‘짬밥’이 생각난다며 일부러 구내식당을 피하는 직원까지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기업은 ‘밥이 최고의 복지’라는 역발상을 했다. 수준 높은 식단으로 직원들의 입맛을 잡으면 그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일의 능률도 오를 것이라는 판단이다. 최근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YG엔터테인먼트의 구내식당을 칭찬해 이슈가 된 것처럼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한몫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물가가 오르면서 점심 가격도 무시 못 할 수준이 됐기 때문에 직원들이 구내식당을 많이 찾는다”며 “자연스럽게 요구 수준도 높아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국내 구내식당은 삼성웰스토리(옛 삼성에버랜드)·아워홈·현대그린푸드·신세계푸드·CJ프레시웨이 등 대기업들이 나눠 서비스하는 시장이다. 이들의 점유율이 70%를 훌쩍 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내식당 서비스가 비슷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회사의 철학이나 급식에 대한 투자금액에 따라 같은 업체를 이용해도 서비스는 천차만별이다.

 구내식당의 절대강자는 정보기술(IT) 업체들이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구글코리아는 점심으로 1인당 식대가 2만원 수준인 뷔페형 급식을 전액 회사 부담으로 제공한다. 호텔 출신 요리사가 운영을 총괄해 한식·중식·일식에 외국인 스페셜식 등으로 매일 다른 테마를 가지고 프리미엄 급식을 내놓는다.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워홈 관계자는 “구글코리아 측이 해외 다른 구글 지사의 급식과 비교해 최상의 퀄리티를 요구했다”고 귀띔했다.

구글 직원들 손님 접대 장소로 활용

40가지 메뉴가 있는 구글코리아 구내식당. [사진 각 업체]

 이 때문에 구글 직원들은 외부 손님을 초대하거나 점심 약속을 잡을 때 회사 식당을 만남의 장소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구글 직원 김모씨는 “직원들이 회사 식당에 대한 자부심이 많아 ‘회사를 떠나도 점심은 생각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NHN엔터테인먼트도 한·중·일식과 스마트정식 네 가지 코너를 운영하고 야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포장마차 형태로 야식을 제공한다. 업무 특성상 밤샘 근무가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라면이나 도시락 같은 든든한 밤참을 준다는 취지다.

현대카드 구내식당의 수제버거 자니로켓. [사진 각 업체]

 ‘밥+국+3찬’이라는 구내식당 공식을 깨고 인기 있는 외식 브랜드를 직접 들여온 회사도 있다. 젊은 감각을 강조하는 현대카드·캐피탈은 구내식당 운영업체인 신세계푸드와 논의 끝에 지난해 8월 미국 수제햄버거 브랜드인 자니로켓을 들여왔다. 전국에 매장 수가 8개밖에 안 되는 수제 버거점이지만 매니어층이 형성될 정도로 관심이 높은 브랜드라 선제적으로 직원들에게 선보인다는 취지다. 가격도 싸다. 직원이 2000원을 부담하면 나머지 금액은 회사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일본식 덮밥인 돈부리 맛집으로 명동과 이태원에서 각광받고 있는 진돈부리도 입점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구내식당이 식사뿐 아니라 간단한 회의 장소로 이용되고 직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웰스토리는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에서 홍대·이태원·가로수길 등에서 인기를 얻는 외식 브랜드의 신메뉴를 선보이는 ‘브랜드 위크’를 진행한다. 토마틸로(멕시칸), 츄로101(스페니시 추러스), 누들박스(아시안 컵밥), 청키면가(홍콩 완탕) 등 이색 브랜드의 요리사를 초청해 직원들은 신메뉴를 경험하게 해준다. 업체는 브랜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서로 이득이다.

이마트, 제품 출시 전 직원이 맛보게

현대백화점의 다이어트 식단 스마트정식. [사진 각 업체]

 국내 기업들이나 대학들이 글로벌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식단부터 배려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아워홈은 무슬림 유학생이 많은 선문대 학생 구내식당에서 할랄푸드를 제공한다. 할랄푸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종교 의식을 거쳐 생산된 재료만 사용하는 음식이다. 치킨야채 볶음밥, 옐로 램커리, 파인애플 볶음밥, 치즈치킨 등 10여 가지 음식을 통해 이슬람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에 무슬림뿐 아니라 한국 학생들에게도 인기다.

 외국인 직원이 많은 서울 상일동의 삼성엔지니어링 사업장도 할랄푸드인 치킨티카 마실라, 칠리소스 치킨구이, 탄두리치킨 등을 제공한다. 안남미(인도차이나 반도의 쌀)로 지은 밥과 화덕에 구운 난이 함께 나오는 인도 정통 커리,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일본식 낫토 도시락 등은 사내 외국인 직원들의 향수병을 달래는 역할을 하는 효자 메뉴다.

전국 면 요리를 내놓는 삼성생명 면기행뎐. [사진 각 업체]

 대구 동성로에 위치한 게임업체 KOG는 급식으로 직원 이탈을 막은 경우다. 3년 전 처음으로 구내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 KOG는 ‘잘나간다’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의 음식을 벤치마킹해 직원들에게 매일 외식하는 기분을 내게 했다. 특히 대구 외 지역에서 모여든 직원들을 위해 점심뿐 아니라 아침과 저녁식사까지 매일 줬다. 식당에는 매일 세 가지 종류의 과일을 비치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대구에서 가장 트렌디한 동성로에 위치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젊은 직원들이 좋아하는 음식 취향을 반영해 스테이크나 샐러드·수제버거는 물론 카나페나 과일꼬치 등의 핑거푸드도 자주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500㎉인 KB국민카드 503 식단.
[사진 각 업체]

 고객에게 내놓기 앞서 직원들의 솔직한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급식장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기업도 있다. 이마트는 성수동 본사 구내식당에서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간편가정식을 내놓는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부터 매달 송탄식 부대찌개전골, 삼원가든 홍탕, 묵은지 김치찌개, 육개장, 맑은 곰탕, 마늘 스테이크 등 유명 맛집과 제휴해 개발한 간편가정식을 제품 포장 그대로 끓는 물에 데워 급식메뉴로 내놨다. 이마트에 급식을 제공하는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다양한 식단을 내놓은 결과 구내식당 이용자가 6~10% 이상 증가했고, 직원들의 냉정한 평가 덕분에 제품의 시장성도 미리 파악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급식에 웰빙열풍이 더해지면서 환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병원들도 식단 개발이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강남세브란스 병원과 손잡고 러시아식 병원식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국내 대형병원을 찾는 러시아 의료 관광객 수가 증가하면서 고향 음식을 원하는 환자나 병원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양사는 국내에 없는 러시아 향신료를 직접 들여와 당뇨식과 유동식, 대장내시경 검사용 식단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러시아인과 함께 품평회를 진행한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고기나 야채 등을 넣고 튀긴 빵인 피로슈키, 만두와 비슷한 팰메니가 특히 인기”라며 “러시아 전통 수프인 보르시치는 고향의 맛이 느껴진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환자·의료관광객 위한 메뉴도 개발

 건국대병원도 아워홈과 함께 3개월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암환자 전용식을 개발했다. 수술 후 필요한 고단백 음식, 식욕이 없거나 메스꺼움을 느낄 때 좋은 음식, 방사선 요오드 치료의 효과를 높이는 음식 등 80여 종의 메뉴를 선보였다. 최근 급증하는 유방암과 갑상샘암에 도움이 되는 메뉴를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전직 최고경영자(CEO)·의사·변호사 등이 주로 거주하는 도심형 고급 실버타운 ‘더 클래식 500’의 뷔페에서는 소화 기능이 저하되는 노인들을 위해 죽을 상시 제공한다. 내장류를 이용한 전골은 피하고 변비 예방을 위한 시리얼과 요거트를 항상 준비해 놓는다.

 잠실 야구장 구내식당에는 프로선수들을 위해 고단백 저칼로리 위주 식단을 제공하고, 구이용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도록 무한리필 해준다. 아워홈 관계자는 “이색 급식은 성장 정체에 다다른 급식 업체들과 기업의 사원 복지 강화 기조가 맞물린 결과”라며 “웰빙·맞춤형 급식 추세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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