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갑<서울대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며칠 지나면 77학년도의 새 학기가 시작된다. 매년 같은 학교 「캘린더」밑에 같은 생활의 「사이클」을 보내고 있어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고 작년과 같이 올해도 보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해방 30여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참으로 엄청난 변화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어떤 학자는 인류만년의 역사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평적으로 약간 고개를 드는 정도의 변화를 겪었을 뿐인데 금세기, 특히 금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수직적인 변화로 달라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육을 하는 사람은 물론 종전과 같은 방법과 내용으로 교육을 해서는 안된 것이 분명하다. 이에 관련해서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어떻게 정리하여 학생이나 교수, 그 밖의 사람들에게 공급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세계에서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 정보가 아주 결핍되고 있는 셈이다. 가령 세계에서 발간되는 학술잡지는 여러 해 전에 벌써 6만 종류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보다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학 중에서 가장 많이 외국학술잡지를 보고 있다는 서울대는 불과 1천여 종을 구입하고 있으며 일본의 지방대학만도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정보는 상당히 많고 학술적 정보도 앞으로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미래를 정보화의 시대로 보고 정보의 생산과 분배의 체계를 유효하게 확립하는 나라가 세계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정보는 중요한 것이며 정보를 적절히 검토, 분류하고 정리해서 필요만 정보를 요긴하게, 또 신속하게 이용자에게 전달해주어야만 사람들이 적절히 변화하는 상황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변화에 대응하는 자세를 바로 세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갖는 모든 전 근대적 요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배격하는 반면 서구의 근대적 요소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강하였다. 그러나 탈공업사회에 접어들면서 근대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는 경향이 서구사회자체에서도 점점 더 심해져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갖는 전근대적 요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도 재평가를 가하여 필요한 것은 보존하면서 새로운 틀에 연결시키도록 학생들은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학우들은 융통성 있는 사고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것도 여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융통성이라는 것은 자기의 주관이 없이 적당히 객관적 상황에 맞추어간다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또 변화의 내용이 다양하기 때문에 항상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면서 자기의 오늘의 위치를 확인하고 항로를 시시각각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한참 달리다 보면 엉뚱한 곳에 끌려가서 다시 거절한 항로에 복귀하는데 많은 시간의 소비와 희생을 초래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을 우리 학생들은 스스로 키우도록 학문의 연마에 힘쓰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그 변화 속에서 어떤 주관, 어떤 인생관,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온 세계의 지성이 그것을 찾는데 몸부림치고 있다. 거기에는 아직 결정적인 것이 없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은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주관을 세우는데 길잡이가 될 관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관념들을 학생들은 차근차근 배워 자기를 살찌게 하는 것이 새봄의 새 학기를 맞아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로 생각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