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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벗어나 자유인으로…|김구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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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흔히 사람들은 「성도」라든가 「해탈」이란 말을 초자연적인 일이나 다다르기 어려운 경지인 것처럼 여긴다. 「고다마·싯달다」가 불타로 성도하신 의의를 우리는 종교적 감정 속에서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도란 한마디로 인격의 완성이고 현실에의 환원이다.
관념적인 그림을 그려놓고 울고 웃는 세상 사람들의 허망한 희극에서 꿈을 깨고 현실 세계를 찾은 분이 바로 불타인 것이다.
그는 신의 계시를 받고 온 사자가 아니라 철저한 인간이었으며 홀연히 온갖 망상의 꿈을 깬 인류의 스승일 따름이다.
26일(음력 12월 8일)은 2천 5백여년 전 석가모니가 성도하신 날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생후7일만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한 나라의 왕자로서 왕성의 존망과 전쟁의 쓰라림도 지켜봤다. 그는 결혼해 자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29세에 출가할 적에는 부정의 아픔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온갖 인생고에서 도피했던 게 아니라 고 그 자체를 정면으로 문제삼아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것이다.
그는 29세에 출가해 6년만에 홀연 대오하여 정각에 이르렀다.
석가모니는 성도 후 인간세상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고향에 돌아와 아내와 아들을 만났고 남편을 그리워했던 여인의 연연한 정을 이해하고 당신의 발을 만지도록 허락했다.
석가모니 불타는 녹야원(사라나트)에서 행한 최초의 법문에서 이 우주의 실상을 인연으로 갈파하시고 개체아의 실재성을 부정하였다. 왜냐하면 자아조차도 영구불변의 항존적 실재가 아니라 인연의 상호관계에서 파악되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꽃처럼 피었다가 꽃처럼 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현상자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의 통일가운데 드러난 여러 가지의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꽃은 시들어서 지고 열매는 떨어져 썩어도 그것은 여전히 살아있는 생명의 표현이다.
그런데 「나」는 현상이 빚어주는 한순간의 상에 집착하고 자아에 집착한다. 지나가 없어진 과거의 상에 집착하고 아직 있지 않은 미래의 기대에 집착하면서 신선하게 살아있는 현재를 얼룩지게 한다. 무명 속에서 욕심이 일고 마음은 대립과 갈등으로 소란하며 마침내 「나」는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여 스스로 무거운 쇠사슬에 몸을 묶는 것이다. 이곳이 곧 지옥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리에게 해탈(대자유)과 지혜에 대해 들려줬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인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는 실천론으로서 중도를 가르쳤는데 곧 조화를 이상으로 하는 자유인의 길이다. 그것은 집착과 편견을 벗어나 참 현실을 발견하는 길이며 남을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일이다.
여기에서는 편견이 끊기고 대립이 해소되며 「나」와 우주가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멀리서 반짝이는 별이며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까지도 「나」와의 관계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지지해주는 조건이 된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매양 같은 근원의 우주이다. 여기에 바로 영원한 현재가 활짝 트인다. 이 곳이 바로 불타의 고향이리라. 그러므로 지혜 안에 새로 태어난 중생은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범죄의 폭력이 파괴의 세력이라면 자비란 또한 조화의 세력일 것이다. 불타는 참다운 실상의 세계를 미망에서 구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그는 구세주인 것이다.
◇필자소개 ▲40세·전남 광주 출생 ▲중앙대 졸업·인도 「펀자비」대학수학 ▲세계 불교우의회 이사 ▲대학생불교연합회 지도교수 ▲현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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