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만 바꾼 「선전용」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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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괴가 25일 내놓은 「남북 정치협상회의」는 북괴가 지금까지 되풀이해 온 「대민족회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이름만 바꾼 것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북괴는 이번 제의에서 「남한 인민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우회형식을 취함으로써 우리 정부를 협상상대로 하지 않으려는 종래의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평양에서 열린 정당 및 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채택됐다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한 민주역량의 대 연합」이란 것은 「대 민족회의」 제의 때 주장한 「남북의 정당·사회단체와 각계각층의 인민의 대표들」의 문구를 조금 유연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또 「남북간 긴장해소 및 핵전쟁에 대한 위험제거」는 이미 박 대통령의 불가침 협정 체결과 재 촉구 등의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제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후퇴감이 짙어 비현실적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북괴는 민족의 불화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 등을 위해 남북 정치협상 회의를 제의한다고 하면서 남한의 반공정책 포기를 운운, 반공연맹 해체를 또다시 조건부로 들고 나왔다.
이것은 내정 불간섭을 원칙으로 한 「7·4 공동성명」에 위배되는 것으로 되풀이 해 온 억지조건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제의의 근본이 되는 3개 항목은 그 발상 자체부터가 문제해결의 현실성을 도외시한 선전용인 것 같다.
외신 보도는 북괴가 남북대화 단절 이후 남북조절위원회나 남북적십자 회담을 열지 않겠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남북 정치협상회의」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 아니냐는 논평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가 무조건 남북대화 재개를 요구하고 있는데 반해 북괴의 주장은 약간 표현이 유연해졌을 뿐 내용은 과거의 제의와 다를 바가 없다.
북괴 방송은 이 제의를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채택했음을 밝힘으로써 북괴 정권 당국의 공식 제의가 아님을 분명히했다. 핵 전쟁 운운은 작년 「스리랑카」에서 열렸던 비동맹회의에서도 북괴가 주장한바 있는데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카터」 미 대통령의 「전세계에서의 핵무기 철거문제 선언」에 시기적으로 영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결국 북괴의 이번 제의는 박 대통령의 불가침 협정 제의를 거부하고 「유엔」과 국제여론을 의식해 종래 주장을 껍데기만 새로 입혀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양태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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