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위안부 발언에 놀랐나 … 아베 "나도 마음 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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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까칠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국빈 오바마’의 일본 방문 2박3일은 엇갈림의 연속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3일 일본 도착 첫 일정으로 아베 총리가 준비했던 긴자(銀座) 스시집 회동부터가 그랬다. 어딘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두 사람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려 아베가 준비한 회심의 카드였다.

하지만 미국 측은 “호텔에서 실무적인 식사를 하면 안 되느냐”며 끝까지 주저했다. 배석자 문제도 마찬가지. 일본은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와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일본대사 두 명만 배석시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에 깐깐한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을 추가로 배석시켰다.

 식사 내내 농담은 없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관련 대화뿐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돈육업계는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자동차업계를 적으로 돌리고는 미국에서 선거하기 힘들다”며 애원하듯 아베를 압박했다.

 정상회담 날도 그랬다. “두 정상이 배석자 없이 잠깐 만나자”는 제안도, 메이지(明治)신궁 방문에 아베 총리가 동행하겠다는 제의도 오바마는 모두 거절했다.

 26일 한 인터넷 사이트 주최 행사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은 시간을 중요하게 여겨 잡담 없이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소개했다. 대놓고 불만을 토로한 건 아니지만 인간적 신뢰 쌓기에 좌절한 섭섭함이 묻어났다. 오바마 대통령이 서울로 떠난 뒤 아베 총리는 “ 미·일 동맹이 강력하게 부활했다”며 자화자찬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미·일 안보조약의 대상”이란 말을 끌어냈고,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지지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 발표까지 미루며 집착했던 TPP 합의에 실패해 빈손으로 서울행 에어포스원을 탄 오바마 대통령의 불만이 컸을 터다. 한국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극도로 민감해하는 위안부 문제에 한 방을 날렸다. “전쟁 중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여성들은 충격적 방식으로 성폭행당했다. 이는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라는 공개비판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이었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 발언 뒤 이틀이 지난 27일 “일본의 생각과 방침을 (국제사회에) 설명해나가겠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와테(岩手)현 시찰 중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심정일 위안부들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20세기는 여성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인권이 침해된 세기였다. 21세기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기가 되도록 일본도 큰 공헌을 하고 싶다”며 의미가 모호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일본 정부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정치·외교 문제화돼선 안 된다”거나 “오바마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일본과 한국인들이 과거보다는 미래를 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주장이 나온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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