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한 수퍼마켓에 붙은 알림글에 목이 메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아들을 찾기 위해 진도로 달려갔던 부모.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부모는 ‘감사합니다’를 먼저 썼다. 그나마 제 손으로 아들과 이별할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마음이었다. 온 국민의 가슴은 찢어진다. 이제는 눈물 흘릴 기력조차 없어진 희생자의 부모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 소용 있겠는가. 나라가 어찌 이렇게 됐을까. 국민의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조국이 두렵다. 특히 걱정스러운 건 국가 시스템 여기저기에 금이 가는 위기가 드러났는데도 이를 개조할 능력이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1993년 10월 10일 서해 훼리호는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찬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국가기록원의 기록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이번 참사와 유사하다. 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에다 선장의 자질 부족이 겹쳤다. 정원을 훨씬 초과해 승객을 태울 정도로 인명을 귀중히 여기지 않았다. 안전요원은 단 2명이었다. 경찰 헬기는 신고 접수 후 30분 지나 출동했다. 두 사고의 차이라면 서해 훼리호 사고 때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점이다. 그나마 먼저 도망치지는 않았다. 당시 사고 이후에 김영삼 정부는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후진국형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때뿐이었다. 두 참사 간에는 20년6개월이라는 세월의 간격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부조리와 불법의 관행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 후퇴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의 무능을 질책했다. 꾸짖어야 한다. 책임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이다(헌법 66조4항). 수반이 먼저 책임지고 반성하겠다고 나서야 했다. 그런 무능한 사람들을 임명한 건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정부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이 제3자처럼 보이는 발언을 계속한다면 국민의 아픔과 상처를 누가 어루만지겠는가.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가 개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과연 누가 앞장서 밀알이 되겠다고 나설까. 국가 시스템을 장악한 관료 마피아들은 이번 사고에서 보듯 자기들 이익만 챙기고 국민의 목숨이 어떻게 되든 나 몰라라 했다. 정치인들은 어떤가. 지지율은 내려가지 않았는지,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등 정파의 이익(이게 자신의 이익이기도 하다)에만 골몰할 뿐이다.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을 만나서 ‘그래도 감사하다’고 머리 숙이는 부모의 심정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정권이나 정부의 안위가 중요한 때가 아니다. 나라의 운명이 갈림길에 섰다. 침몰이냐, 아픔을 딛고 다시 비상하느냐. 박 대통령은 모든 걸 던져 나라를 개조하는 데 나서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4월 16일에 멈춘 세월호의 시계를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