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제53화 사상검사-선우종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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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향 통고속의 전화>
1949년9월16일 낮. 서울특별시 경찰국 사찰과장실의 전화「벨」소리가 유난히도 요란스럽게 울렸다.
『여보세요- 시사사찰 과장실 입니다.』
말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빠른 말로 최운하 과장을 찾았다.
『거기 어디십니까?』
『어디라는 것은 과장께 직접 말할테니 계시거든 얼른 바꾸어 주시오.』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과장이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나 최운하 과장인데 누구십니까.』
『이거 당돌하게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나 남노당 서울시 당부장 홍민표라는 사람입니다』
『네』
최 과장은 귀를 의심했다.
『호…홍민표요.』
처음 듣는 이름에 어리둥절한 최 과장은 얼떨떨했다.
『9월18일 나의 휘하를 거느리고 귀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뜻밖의 폭탄 선언은 조금도 현실 같이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귀순자에게 문은 옅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그것 참 잘 하셨습니다. 언제 어떻게 하시렵니까.』
『몇가지 요구조건이 있는데 꼭 들어주어야 되갔습니다.
첫째 우리가 모일 장소를 마련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진기자는 사절합니다. 회의장 안에는 우리 당원 이외의 아무도 들어오지 앓는다고 약속하신다면 9월18일에 전원 귀순하겠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후에 다시 전화드릴 때에 알려주십시오.』
『선처하겠습니다. 또 전화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 과장은 방망이로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곧바로 서울지검에 연락하여 검·경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다.
누구 하나 홍의 귀순제의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홍이라는 인물을 과언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만이 제기되었다.
검·경 수사관 회의에서는 홍 등의 화합장소로 시경 사찰과 분실을 내주기로 하고 시간은 정오로 결정하였다. 경찰은 외곽경비에만 치중하고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최 사찰과장은 두번째 홍의 전화를 받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수사진의 이목은 사찰과 분실로 총 집중되었다.
11시50분께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수하물도 꽤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긴장은 더해 갔다. 저들이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지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숨막히는 1시간을 밖에서 보낸 검·경 관계관들은 내부의 반응만을 주지하고 있었다. 이윽고 오후1시가 다 되어 사람이 하나 밖으로 나오며『회의 끝났습니다. 신문기자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십시오』
대기했던 신문기자들이 몰려들자 준비했던 귀순성명을 발표했다.
회의장 안에 들어가 보니 각종 무기와 사제폭탄·수류탄, 심지어 식칼까지 내놓아「테이블」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보다 더 큰 수확은 남로당 서울시 당부와 특별위원회의 기밀서류 일체를 고스란히 가져온 사실이다.
검·경 수사관들은 다시 이 뜻하지 않은 거대한 수확을 자축하면서 귀순자 전원을 경찰관으로 특채하였다. 책임자 홍민표는 경위, 그 밑으로 당내 직책에 따라 시경·사찰 등으로 홍민표 부대는 고스란히 건별 사찰과의 주요 구성분자로 모두 숙청 작업에 나선 것이다.
감공 전선에서 이들이 대한민국에 끼친 공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큰 것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공산당 소탕전이 걸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공노자 홍민표도 부산에서 한때 이북 간첩으로 몰린 웃지 못할 사실이 있어 필자가 당한 사실과 일맥상통하는 점에 고소를 금할 수 없다.
필자가 장면 총리 비서실장으로 재직시 특무 부대장이었던 김창용 중장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회로 당시 신문사를 운영하던 홍민표를 잡아넣었는데「홍콩」에서 아편을 밀수입한 혐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자금 삼아 북괴의 대남 공작을 하려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용두사미격으로 흐지부지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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