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씨의 한국관계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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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카터」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사이러스·밴스」씨의 최근 한국관계 발언이 특별한 주목을 끌고 있다. 「밴스」씨는 최신호 「뉴스위크」지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나 이 문제는 한일과의 협의 하에 극히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어서 『새 행정부의 대한정책은 한일 두 나라에 모두 만족스런 것이어야 하며한 일의 안보 이해와 양립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밴슨」씨의 이와 같은 발언에서 우리는 「카터」 외교정책이 내포한 현실주의와 장기전망의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간파할 수 있다고 하겠다.
『원칙적으로 지지하지만…』한 것이 장기적인 전망이라면 『한일의 안보와 양립되어야…』한 것은 이를테면 현실주의적 자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의 어떤 나라 치고 군사·외교전략의 장기적 전망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전망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눈앞의 현실에 손해를 끼쳐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이상이니 목표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보탬이 되고 현실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비로소 건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어, 서구에 주둔한 미군이나 한국에 와있는 미 지상군의 장래 문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항상 연구해야할 장기적 과제로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주한미군이 영구히 이 땅에 머물러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동북아 전역에 안정된 세력균형이 확보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구조가 정착한 뒤 우리의 자주국방능력이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는데 따라 주한 미 지상군의 존재도 그때 가서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엔 아직도 먼 이 시점에서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를 섣불리 거론한다는 것은 한일 두 나라는 물론 미국자체를 위해서도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한다.
우선 주한미군의 감축론은 북괴의 오판과 남침야욕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일본의 정치적·군사적 안정을 파괴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자민당의 안정세가 교란된 작금의 일본 정치풍토에 만약 주한미군의 감축론 마저 제기 된다면 미국이 그처럼 기대하는 일본의 안정은 더 이상 바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비단 한일의 안정뿐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과 서구방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한미군과 전술핵탄두는 일단 유사시에 소련의 군사력이 서 혈로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직시해야 할 「현실」의 상황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도외시한 장기전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밴스」씨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그 현실주의적 측면에 보다 큰 역점이 두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이 설정한 도덕적 이상의 건실성을 위해서라도 「카터」행정부의 외교 진은 「밴슨씨」자신이 언명한 그대로 『한일 두 나라에 다같이 만족스런』대한정책만을 입안하고 집행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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