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리셋’하라, 대한민국 재난 대응 시스템

중앙선데이

입력 2014.04.2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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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02면

세월호가 침몰한 지 나흘이 지났지만 실종자 구조작업엔 진전이 영 보이지 않는다. 어둡고 차디찬 바닷속에 갇힌 어린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 심정이 어떻겠는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수많은 가족의 애간장이 타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응태세는 영 미덥지 않다. 실종자 가족들은 급기야 18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호소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고 합니다.”

 사고 수습을 맡은 정부에 강한 불신과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이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다. 초기 대응에 미숙함을 노출했던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이를 피해자들의 격앙된 감정 표출쯤으로 넘긴다면 정부로선 자격 미달이다. 그들이 정부가 아닌 국민에게 직접 호소했다는 것은 공권력이 주인으로부터 불신임 통보를 받았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정상적인 공복(公僕) 의식을 지닌 당국자라면 그 통렬한 의미를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 비슷한 참사를 여러 번 겪었으면서도 또다시 엄청난 희생자들을 내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나 삶의 양식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모두들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요란하게 외치곤 했다. 역대 정부 역시 후속 대책으로 이런저런 조치들을 쏟아냈다. 그런데도 왜 세월호의 침몰을 막지 못했고, 선실에 갇힌 수많은 어린 학생을 신속히 구해내지 못했나.

 시스템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법령·규칙·제도와 같은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운영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형식에 주력한 채 실질적 운영엔 소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후진국형 참사가 일어났다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안전과 관련해선 웬만한 규제나 법령이 다 있다. ‘튼튼안전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내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라는 조직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정작 사고가 났을 때 돌아가지 않는데.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도 따르지 않고, 시스템을 갖추고도 돌리지 못하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의 안전대책과 재난대응 시스템은 사고 때 펴지지 않은 구명보트와 뭐가 다른가. 그런 반쪽짜리 시스템을 만들어 낸 기성세대 모두 못 다 핀 어린 넋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물론 그 운영 시스템을 정비하는 게 쉽지는 않다. 형식적인 제도들이야 대통령 앞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좋아하는 공무원들이 척척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조직 구조나 당국자들의 인식으로는 뭘 만들어도 마찬가지다. 이젠 먹통이 된 컴퓨터를 돌리기 위해 전원을 껐다 다시 켜듯이 안전과 재난대응 체계를 리셋해 처음부터 틀을 다시 짜야 할 때다.

 우선 취약해 보이는 재난대응 능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해양경찰, 군 등 구조장비와 인력을 지닌 조직과 유관기관들이 재난구조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마치 매년 합동 군사훈련 하듯 날을 잡아 실전처럼 피해상황 파악, 구조, 장비 집결, 인양, 보상, 정보 공개, 원인 조사, 사후 조치 등 일련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연습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 대형사고가 났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다. 미국에선 1989년 유조선 엑손 발데스의 좌초로 인한 기름 유출사고 이후 3년에 한 번씩 모든 유관기관이 한데 모여 실전과 같은 방재훈련을 하고 있다.

 조직 편제도 손봐야 한다. 현재 심각한 재난이 일어나면 안전행정부 장관을 중앙본부장, 안행부 제2차관을 차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대응에 나서게 돼 있다. 그런데 안행부 장·차관이 과연 재난대응의 전문가인가. 행정과 처신의 달인일지는 몰라도 재난대응엔 초보일 수 있다. 이번에도 초기에 차관 입에서 오락가락하는 발표가 나와 혼선과 불신을 키우지 않았나. 그럴 바에야 차라리 본부장은 직급·소속을 떠나 재난 수습 현장을 가장 잘 지휘할 수 있는 전문가로 대체하고, 안행부 장관을 차장으로 임명해 지원하도록 하는 게 낫다.

 장기적으로는 안전과 구조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우수 인력이 모여들도록 처우를 대폭 개선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외국의 전문가를 영입해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차제에 4월 16일을 매년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다지는 날로 삼자. 또 이날을 전후해 일정 기간을 국가적 안전 강조 주간으로 지정해 대규모 시설이나 교통수단의 안전실태를 점검하고 재난대응 훈련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자학하기만 하며 날을 지새워선 안 된다. 한탄하고 규탄하다가 시간 좀 흐르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리고 비슷한 사고를 또 당해 가슴을 치고….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엔 정말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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