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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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말을 앞두고 통화량 및 물가정세가 매우 불안해지고 있지않느냐하는 염려가 일고 있으며 제반 경제지표로 보아 그것이 단순한 걱정만은 아니라 하겠다.
9월말까지의 국내여신이 5천여억원 증가한데 반해서 앞으로 석달 동안에 풀려 나갈 국내 여신한도가 4천여억원에 이르러, 너무나 짧은 기간에 그토록 많은 자금이 집중적으로 나가는 것은 물가의 불안정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위에 전력요금 철도요금 우편요금 전화요금 등이 일제히 대폭적으로 인상될 전망이어서 통화적인 요소는 물론, 개별가격요소도 적지 않게 도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행정력으로 억눌러왔던 여러가지 상품가격도 이들 관영요금이나 공공요금 인상을 계기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므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공산이 짙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내적인 물가요인 말고도 해외부문에서 파급되는 물가요인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연말이나 연초를 고비로 해서 원유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이고 수출수요의 계속적인 호조와 단기해외신용유입의 증가에 따른 통화량 증가도 지금으로서는 막기 힘들게 되었다.
물가나 통화량 정세가 이처럼 연말연초를 고비로 해서 크게 불안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정책은 근본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모든 물가요인을 고려하더라도 10%선의 물가상승 목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어 일단은 기대하는 바이나, 그것이 연말까지의 통계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리 큰 뜻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책이 먼저 다뤄야할 것은 지금의 경제정세가 물가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느냐, 아니면 물가압력이 완화되고있는 과정에 있느냐를 시급히 가름하는 일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정세판단에 따라서 투자·성장률, 그리고 물가의 관계를 조정해야만 비로소 안정기조를 다져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벌써 물가를 희생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성장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있는 점으로 보아도 정책기조에 대한 확고한 방침이 먼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성장률은 높을수록 좋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한편에서, 물가는 당초목표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의욕으로서는 높이 살만한 것일지도 모르나 경제논리로 보아서는 두 토끼를 한꺼번에 쫓는 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지금의 성장 추이나 수출신장률에 만족하기보다는 보다 착실하게 성장한다는 뜻에서 연초에 정부가 내걸었던 안정우선정책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판단한다.
73년과 74년의 경험으로 볼 때 이례적인 호황에 심취한 여마와 부담이 너무나 컸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오늘의 국제경제동향이 74년의 경우와 같이 극적으로 반전할 공산은 크지 않다고 하겠으나 미일의 77년도 성장전망이 올해보다 나쁘게 예측되고 있는 점으로 보거나 IMF총회에서 국제수지 적자국이 과거와 같이 국제적인 금융지원을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보다는 국내정책의 견실화를 통해서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는 점으로 보거나, 우리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앞으로 안정정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종합정책이 연말물가목표라는 근시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차원에서 마련되고 집행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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