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개혁 신무기, 무덤 속의 후야오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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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후야오방(胡耀邦·1989년 사망) 전 공산당 총서기 살리기에 나섰다. 최근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등이 급진 개혁에 경고를 하고 나서자 후의 ‘개혁정신’으로 이를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죽은 후야오방으로 산 개혁 저항세력을 치는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이다.

 계기는 후 전 총서기 25주기(4월 15일)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은 11일 후난(湖南)성 류양 시에 있는 후의 옛집을 전격 방문해 참배하며 그의 개혁정신을 기렸다. 후 주석은 최근 장 전 주석과 함께 시 주석에게 지나친 개혁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이날 참배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강도 높은 개혁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언론도 전례 없이 후를 기리고 있다. 베이징 당 위원회 기관지인 신경보(新京報)는 15일 ‘지도자 발언 중의 후야오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그동안 후를 지지했던 국가 지도부 실명을 거론하고 그들의 발언 내용을 실었다. 후에 대한 기사는 그동안 종종 관영 언론에 보도됐지만 그를 지지하는 지도부 이름이 한꺼번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는 당 총서기 재임(1982~87년) 당시 언론 자유를 포함한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다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실각됐고 이는 89년 유혈 민주화 시위인 천안문 사태로 이어졌다. 이후 중국 정부는 언론과 인터넷에서 후 관련 기사를 통제하고 있다. 신경보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2010년 4월 인민일보 기고문에서 “후는 칠순이 지났지만 걸으면서 연구하고 식사 시간에도 일을 했다. 그가 돌아가신 뒤 나는 매년 춘절(설날) 때 문안 인사를 드리며 그의 개혁정신을 생각한다”고 적었다.

 이 신문은 또 10년 전 있었던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후야오방 탄생 90주년’ 좌담회 발언 내용까지 실었다. 당시 쩡은 “후의 역사적 공적과 뛰어난 품덕은 당과 인민의 마음에 영원토록 깊이 새겨져 있다”며 존경을 표했다. 현직 고위 관리의 과거 발언도 소개됐는데 멍젠주(孟建柱) 중앙정법위위원회 서기는 “후 동지는 15세의 나이에 직업 혁명가로서 투쟁한 개혁가”라고 평가했 다. 관련 글에 대한 인터넷 통제도 풀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중국 인터넷에는 후를 추모하는 수천 건의 글이 올라왔으나 중국 당국이 이를 삭제하지 않고 있다. 89년 그의 사망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시 주석의 후 전 총서기의 개혁정신에 대한 높은 평가와 직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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