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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9화> 아버지는 내복광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아버지의 최근 셀카. 산책 중이라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 모자를 착용했다. 평소와 다른 산책 분위기를 내려고 즐겨쓰던 모자 대신 다른 것을 썼다. 하지만 산책 중 선글라스를 잃어버려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하나 사 드려야 겠다. [이현택 기자]

"내복을 못 벗겠어."

4월 15일 오후 4시. 아버지는 내복을 입고 있다. 현재 기온 섭씨 17도. 뉴스에는 초여름 날씨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말이다. 아버지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더니 불안하다는 말을 한다.

"아니, 안 더워요?"

"덥긴 하지."

"그럼 옷을 얇게 입어야죠."

"언제 추워질지 모르잖아. 내복만 입고 있으면 추울 때 감기라도 걸릴 수 있어. 그래서 내복하고 털스웨터, 잠바를 껴입지. 땀 나도 뭐 감기 걸리는 것 보다는 낫잖아."

아버지는 여름에도 춥다. 이유는 뻔하다. 암 투병을 하면서 살이 빠져서 그렇다. 약 40㎏ 정도 나간다. 게다가 나이도 들고 기나긴 치료를 겪으면서 면역력도 약해졌다. 안 껴입을 수가 없다. 미관상의 이유도 있다. 암투병을 하면서 몸이 빼빼 말라버린 것을 굳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암환자 중에서도 체격이 좋은 사람도 있고, 굳이 암환자라서 아파보이는 스타일링을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일타쌍피'의 심정으로 옷을 껴입는 것이다.

사실 암환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엥? 아버님이 내복을 아직도 입으셔?"라는 식으로 반응하거나, 아니면 "춥게 느껴지나보지" 정도의 담담한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그러다가 막상 가족 중 누가 암 진단을 받게 되면 내복에 마스크 등을 챙기는 것을 물어보느라 정신이 없다.

얘기 나온 김에 아버지를 통해 지켜봤던 암환자의 의상에 대해 알아봤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이다.

#1. 마스크

내가 볼 때 가장 중요한 '장비'는 마스크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를 막고, 면역력이 약한 암환자의 특성상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들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의학적인 이야기고,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콧물이다. 내가 봤던 아버지는 콧물을 달고 다녔다. 일부는 항암제의 부작용일 것이고, 일부는 면역력이 약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휴지 몇 장으로는 훌쩍대며 쏟아지는 콧물을 닦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여행용 티슈 한 통씩을 지참할 수도 없다. 또한 급히 콧물이 떨어지거나, 산책을 하는 중 부지불식간에 콧물이 쏟아질 수 있다. 이를 막아주는 것이 마스크다.

같은 이유로, 암환자 아버지는 마스크 한 장만 착용하고 외출을 하지 않는다. 마스크가 콧물이나 먼지 등으로 더러워져, 외출 도중 마스크를 교체해서 착용해야 할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밖에 나갈 때 깨끗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여분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이다.

사용한 마스크는 매일 삶아야 한다. 그 정도는 아버지가 직접 한다. 밖에서 일하는 어머니에 대한 배려다.

자녀들이나 암환자를 만나는 지인들이 알아둬야 할 매너도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암환자와 식사를 하기 직전, 반드시 티슈를 챙겨줘야 한다. 이미 콧물이 나와있다.

#2. 모자와 가발

모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아버지는 파란색 모자를 줄곧 쓴다. 그동안 '불효일기'에 나온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 대개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왜 그것만 쓰냐고 물어보니, 그 모자가 좋다고 한다. 일종의 '패션'이다.

집에서 아버지는 비니를 머리에 쓴다. 비니를 쓰는 것은 머리가 추울까봐 쓰는 이유, 탈모가 된 머리를 보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 외에, 위생상 이유도 있다. 바로 '잔털'이다. 암환자들은 머리카락이 빠진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머리가 빠진 그 자리에도 꾸준히 잔털이 나고, 또 빠진다는 점이다. 온 집안이 잔털로 가득할 수 있고, 아버지가 잔털을 호흡하면서 마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집을 자주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잔털이 떨어지지 않도록 자주 머리를 밀어야 한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되는 것이 바로 집 안에서 비니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 바닥에 머리카락이 덜 떨어진다.

여성 환자들의 경우는 가발에 관심이 많다. '불효일기' 연재를 자문하고 있는 약사는 "여성 환자들의 경우, 가발 업체 담당자들이 병원을 방문하면 관심있게 듣는다"면서 "가발도 평소 의상 스타일에 따라 맞춰서 착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3. 그 외의 것들

물론 마스크와 모자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점퍼와 스웨터 역시 잇(it) 아이템이다. 점퍼의 경우 기능성이 제일이다. 겨울에도 땀날 정도의 점퍼를 입어야, 암환자에게는 "안 춥다" 정도의 느낌이 든다. 마음 같아서야 노스페이스 같은 곳에서 100만원짜리 패딩을 사다 드리고 싶지만, 병원비도 있고 빠듯한 살림에 어렵다. 차선으로 지인을 통해 공업용 점퍼를 구해서 드렸다. 극지방에서도 몸을 보호해 주는 옷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스웨터는 딱히 멋을 낼 수 없는 암환자들에게 좋은 아이템이다. 아버지의 경우 생일 때 선물받은 스웨터가 몇 개 있다. 외식을 할 때 뭔가 따스함을 주면서 멋을 낼 수 있다는 이유로 좋아한다. 셔츠의 경우 주로 검은색 폴라티셔츠를 입는다. 때가 덜 타고, 따스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선글라스도 암환자들 사이에서 많이 쓴다. 눈과 눈썹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는데, 그 외에도 패션상 이유도 있다. 피곤해 보이는 눈 주위를 가려주고, 약간은 멋을 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지팡이는 기능성 아이템이다. 상태가 좋은 암환자들은 지팡이까지는 쓰지 않고 있지만, 몸이 편치 않은 암환자들은 지팡이를 애용한다. 같은 길을 걷더라도 조금 더 편하고, 산책 등 운동을 할 때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내복 이야기로 돌아오자. 그렇다면 아버지는 언제 내복을 벗게 될까. 지난해까지는 4월 1일이었다. 하지만 4월 중순이 된 요즘도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고 낮에는 초여름 더위에 근접한 올해 날씨를 감안하면, 6월 정도는 되어야 벗지 않을까 싶다. 언제 감기에 걸려 고생하실지 모른다. 암환자 부모님이 있는 불효자 독자들이라면 오늘 슬쩍 부모님께 내복 안 필요하시냐고 여쭤보는 것도 방법일 듯 싶다.

*ps. 아버지와 내복 이야기를 하느라 통화를 하는데, 아버지는 고모님 이야기를 한다. 서울시내 한 성당에서 수녀로 봉직하고 있다. 아버지는 "수녀님도 감기가 잘 안 떨어지신다더라. 한 달이 넘었다나봐"라면서 내복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본인 건강부터 챙기시라"고 말씀드렸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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