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로 전향시킨 골수 조총련|의사의 따뜻한 간호에 감동한 최항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조총련계 재일동포 최항기씨(40·명고옥거주)는 의사의 따뜻하고 정성스런 병간호에 감동, 『반공전선의 기수로서 멸공대열에 앞장 서겠다』고 다짐하며 대한민국의 품으로 전향했다.
추석성묘단 제2진으로 지난달 30일 입국한 최씨는 산업시찰에 나서 31일 대전에 내려갔다가 숙소인 중앙관광「호텔」에서 여독때문에 몸살을 앓게 되었다.
「호텔」종업원들은 최씨를 급히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하려했으나 최씨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손만 내 저었다.
일본을 떠나기 직전 조총련 공작원들이 하던 『너는 가면 죽는다』는 협박이 아직도 귀에 맴들던 최씨는 치료를 핑계로 자신을 꼭 납치하려는 줄로만 알았다는 것이다.
「호텔」에서는 하는 수 없이 이날의 당직 공의인 박산부인과원장 박기홍씨(49)를 왕진시켰다.
박원장은 5백cc짜리「링게르」가 다 들어갈 때까지 3시간을 최씨 곁을 떠나지 않으며 보살폈다.
통증을 잊고 정신을 차린 최씨는『거짓이라도 이처럼 오랜 시간을 친절히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박원장은『의술은 인술입니다. 당신이 비록 나쁜 사람이라 해도 나는 의사로서 당신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같은 피가 흐르는 당신을, 더우기 고향과 동족애가 그리워 찾아온 내 동포를 정성껏 치료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고 대답했다.
최씨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이때부터 최씨는 마음속의 얘기를 털어놓으며 시내나들이를 하고싶다고 했다.
박원장은 최씨를 대흥동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인삼차를 마시며 박원장 집안을 두루 구경한 최씨는 이렇게 잘 사는 줄 몰랐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경남 하동이 고향인 최씨는 이번 방문길에도 이웃과 친척들을 속이고 왔다는 것이다.
「플룻」연주자로 북송선을 타고 이북으로 간 동생이 공장에서 막노동을 하며「사카린」 과 옷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얼마 전에 보냈었다는 최씨는 북한의 참담한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겠다며 돌아가면 북송선을 타려는 외삼촌부터 말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박원장집을 떠나면서 최씨는『선생님의 사상을 초월한 인술이 한 공산주의 열성당원을 반공투사로 전향 시켰다』며 밝게 웃었다.<대전=김달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