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직통전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 전역에 핵경보령이 내린 일이 있었다. 1971년3월 미국의 라디오와 TV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적의 미사일공격을 경보하는 비상사태의 선포를 알렸다.
숨막힐 듯한 긴장이 지속되던 40분 후에야 이것은 하나의 웃지 못할 희극이었음이 밝혀졌다.
콜로라도주의 샤이엔 산에는 미 육군의 방위경보망 장치가 있다. 한 기술자가 시험을 하던 중 착오로 문제의 버튼을 누른 것이다. 언젠가는 미국의 공군기지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비행기들이 발동을 거는데 그것은 역시 착오임이 드러났다.
M·로쉬월드라는 작가의 과학소설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한때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던 『제7지하호』. 이 소설은 불과 2시간58분만에 인류절멸의 전쟁은 끝나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문제는 그 전쟁이 기계와 무기의 기술적인 착오로 시작된 데에 있다. 먼저 적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12발이 전자관리장치에서 이탈한다. 적측은 재빨리 방송을 통해 그것은 착오에 의한 것이었다고 상대방에 알려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상대방의 아톰폰이라는 기계는 민감하게 적의 미사일 발사를 탐지하고 대응한다. 우발에 의한 전쟁이 인간 아닌 기계에 의해 자동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이미 이와같은 경우를 공상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고, 1963년6월20일 제네바에서 하나의 협정을 맺어 두었다. 사고·오산 및 통신의 착오에 의한 전쟁의 위험성을 감소하기 위해 미·소 사이에 직통통신 연락선을 가설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호틀라인이 그것이다. 워싱턴의 백악관과 모스크바의 크렘린을 잇는 이 통신선은 유선과 무선 두가지. 대서양 해저∼런던∼스톡홀름∼헬싱키를 경유하는 유선과 워싱턴∼단딜 구릉(아르헨티나)∼모스크바의 무선.
그후 이런 호틀라인은 불·소 사이(66년 그린라인), 영·소 사이(67년), 미·영·독 사이,소·중공 사이, 미·중공 사이에도 설치되었다.
호틀라인의 정신은 긴장지대인 한반도에서도 적용되었다.
72년8월24일 남북적십자사에 설치된 직통전화는 그동안 무려 1천8백32건의 통화를 기록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평양의 중심부와 연결된 이 전화는 하나의 상징으로서도 의미가 큰 것이었다.
최근 이 전화의 통화가 끊어졌다는 뉴스는 충격적이다. 긴장이 고조될수록 그 전화의 쓸모는 커진다. 미·소도 쿠바사태 때 이런 전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었다. 정작 쓸모가 있을 때 통화가 막히는 그 전화의 현실이야말로 한반도정세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