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년생 “졸업이 싫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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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로 이수학점을 모두 채워 졸업하게 됐지만, 아직 사회로 나갈 준비가 안돼 졸업을 미루고자 합니다. 교수님의 선처를 부탁합니다."

지난 6월 서울대 인문대 98학번 정모(26.여)씨가 학과 사무실에 제출한 '졸업포기각서'의 내용이다. 정씨는 원래 올 상반기에 취직되면 8월에 졸업할 예정이었다.

지난 3월 졸업신청서를 내고 논문까지 제출했는데, 대기업 입사시험에 연거푸 네 번이나 실패하자 당초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그는 "졸업생이 되면 다른 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력이 있을 것이란 인식에 면접에서 불리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당사자의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졸업포기각서를 받았다. 정씨는 한 학기 더 다니면서 학점 평점도 올리고 취업시험도 준비할 계획이다.

실업난이 심화하면서 취업 때까지 졸업을 늦추는 '캠퍼스 모라토리엄족(族)'이 늘고 있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면서 취업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다.

서울대 인문대의 경우 올해 8월 졸업 대상 1백28명 중 10%인 12명이 졸업을 미뤘다. 졸업신청을 포기하고(4명), 졸업논문을 제출하지 않고(3명), 이수학점이 미달하는(5명) 방법을 이용했다. 사회대도 당초 졸업을 신청했던 1백50여명 중 11명이 신청을 철회하거나 수강취소로 졸업을 미뤘다.

연세대 인문학부 4학년 신모(26)군도 상반기 중 대기업 취직에 실패하자 기말고사 직전 졸업연기를 신청했다. 졸업학점(1백40)을 7학점이나 초과했지만, 다음 학기에 5학점을 더 들을 생각이다.

그는 "도서관도 이용하고 취업에 필요한 과목도 수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학교도 이런 학생(5학점 이하 신청자)들에겐 수업료를 정상 등록금의 3분의 1인 80만원만 받고 있다.

반면 졸업유예원을 받지 않고 총 학점을 이수하면 자동으로 졸업시키는 대학에서는 ▶고의로 학점 펑크내기▶졸업시험 응시 않기▶논문 제출 않기 등 편법이 등장하고 있다.

외국어대 서모(26)군은 여름방학 직전 계절수업을 취소했다. 당초 계절수업에서 두 과목을 듣고 졸업하려 했지만, 취직이 확정되지 않아 졸업을 늦추기로 했다.

이화여대의 경우 올 2월 졸업생 중 정상적으로 8학기에 마친 학생은 2천2백59명, 9학기 이상 다닌 '늦둥이 졸업생'은 3백53명이었다. 늦둥이 졸업생이 전년도의 2백78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원인=취업에서 재학생보다 졸업생이 불리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취업전문업체 '스카우트'가 최근 대기업 채용담당자 3백1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4%인 2백1명이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취업정보업체인 리쿠르트사 관계자는 "최근 취업공고를 낸 S정밀화학 등 대기업 두 곳은 채용조건에 아예 '내년 2월 졸업예정자만 뽑는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기사제공 : 중앙일보 (http://www.joins.com/)
이철재.김필규.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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