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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 2년6개월 만에 최대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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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때도 4월이었다. 미국 증시에서 ‘닷컴(.com) 버블’이 터지기 시작한 때 얘기다. 정확히 14년 전인 2000년 4월 10일(현지시간) 나스닥 지수는 5.81% 떨어졌다. 사상 최대 낙폭(-7.64%)을 기록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이었다. 버블 붕괴는 공포 그 자체였다. 역대 최장기 ‘황소’ 장세(1987~2000년)는 그걸로 끝이었다. 주가는 이후 1년도 안 돼 반 토막이 났다. 닷컴 기업들의 파산이 속출했다.

 10일 나스닥 지수는 3.10% 빠지며 뉴욕 증시 하락세를 이끌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2.09%, 다우지수가 1.62% 하락했다. 나스닥은 2년6개월 만에 최악의 하루였다. 지수 하락률은 2011년 11월 이후 최대다. 나스닥 100대 종목 중 주가가 오른 것은 딱 하나였다. 정보기술(IT)주와 바이오기술주의 하락폭이 컸다. 페이스북(-5.2%)과 구글(-4.1%) 주가가 크게 내렸고, 제약사인 길리어드 사이언스(-7.3%)가 바이오주 급락을 촉발했다.

 닷컴 버블 붕괴 공포는 아시아로도 번졌다. 일본 증시가 특히 큰 타격을 받아 닛케이225 지수는 11일 하루 2.38% 하락했다. 이날 한국(-0.56%), 홍콩(-0.79%), 대만(-0.45%) 주가도 떨어졌다.

 시장의 관심은 최근 나스닥 시장 하락이 제2의 닷컴 버블 붕괴의 서곡인가로 압축된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는 “앞으로 12개월 이내 1987년보다 더 심각한 증시 폭락을 목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표면적인 양상은 원조 닷컴 버블 때와 닮았다. 우선 주가 급락 전 나스닥 주가가 급등했다. 특히 IT·바이오 기업들의 기업공개(IPO)가 부쩍 늘었다. 회사명 뒤에 ‘닷컴’만 붙으면 돈이 붙던 닷컴 버블 당시가 연상될 정도다.

 그러나 통계의 내면을 보면 차이가 있다. 나스닥 지수는 1999년부터 2000년 3월까지 200% 넘게 뛰었지만, 이번엔 1년 새 30% 정도 올랐다. 올해 IPO 수는 84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9개보다 배 이상 늘었지만, 2000년 160개의 절반밖에 안 된다. 수익 대비 주가 수준도 포인트다. 2000년엔 S&P500의 바이오기술 지수 가격은 주당 수익의 57배였는데, 지금은 29배다. 지표만 보면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때만큼 충격이 크지 않을 거란 전망이 많다.

 문제는 심리다. 미국 증시는 올해 6년째 상승장세에 접어들었다. 투자자들은 상승 피로감이 커 작은 악재에도 주식을 던지기 일쑤다.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닷컴 버블 붕괴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달렸다. 버블 붕괴는 늘 공포가 도화선이 됐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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