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환자 마취되면 섀도 닥터가 수술" … 성형의들 양심선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이상목 회장(오른쪽)을 비롯한 임원들이 10일 최근 잇따른 성형수술 의료사고와 일부 병원의 비도덕적 운영 행태에 대해 사죄하고 앞으로 내부 자정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의사회는 “전문가 단체로서 제식구 감싸기를 하다가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고 사과했다. [김경빈 기자]

“유명 병원장이 수술할 것처럼 상담해놓고 정작 환자가 마취로 잠이 들면 다른 의사가 들어가 수술해요. 대개 전문의를 갓 딴 초보 의사이거나 심지어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도 있어요.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섀도 닥터(Shadow doctor)’의 존재를 외국인 환자들도 알아요.”

 ‘섀도 수술(대리 수술)’과 의사 면허대여 같은 불법·탈법 행위가 성형 업계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는 의사들의 양심 선언이 나왔다. 성형외과 의사 단체인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10일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들은 “일부 비도덕적인 병원의 그릇된 행태로 최근 성형수술 중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해 국민께 사죄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성형외과 의사들의 내부 고발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의 2011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13.5건의 성형수술을 한다. 세계 1위다. 우수한 의료진 덕분에 수술 실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일본 등지에서 외국인 성형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다. 그런 화려함 뒤에 부정적인 부분이 이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의사회가 지적한 대표적인 탈법행위가 섀도 수술이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상담실장은 “광고와 홈페이지에 대표원장 2~3명이 진료한다고 소개해 놓고 실제 수술은 소속 의사 수십 명이 한다. 이 병원의 수술 건수는 의사 2~3명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폭로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의사가 바뀐 걸 환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수면마취제를 과도하게 투여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소 마취만 해도 되는데 수면마취를 한다는 것이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개인 성형외과에서 20년 동안 쓸 마취제를 한 명의 의사가 1년 만에 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의사회는 “대량의 수면마취제를 확보하기 위해 의사면허를 빌려 의료기관을 새로 개설하고, 불법행위를 감추기 위해 면허대여자를 바꿔가면서 운영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 명의를 빌려 성형외과를 여러 개 불법 운영하기도 한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의사 이름으로 성형외과를 열어 수익을 공유한다”며 “실제 소유는 한 명”이라고 밝혔다. 2012년 8월 의료법이 개정돼 한 명의 의사가 여러 곳에 병원을 열 수 없다.

 병원장과 고용의사가 ‘노예계약’을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의사회가 공개한 계약서에는 “상담실장이 환자에게 권한 수술 방법을 ‘을’(고용된 의사)이 임의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갑’(병원)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수술 시간을 스톱워치로 재기도 한다.

 성형수술 사고가 끊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비전문의사의 수술이다. 영업 중인 성형외과 전문의는 1400명인데 8000~9000명의 비성형외과 전문의나 일반의사가 성형수술에 뛰어들고 있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작은 의원 중 상당수는 수술실이 좁고 소독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으며 마취과 의사가 상주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여대생이 숨진 부산의 한 의원 의사는 성형 전문의가 아니었다.

 의사회는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지난해 12월 여고생 뇌사사고가 발생한 서울 강남의 G성형외과를 조사하고 있다. 잠정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1일 병원장 유모씨를 회원에서 제명했다. 불법적인 면허 대여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3명에 대해 회원자격 정지 3년, 8명은 회원자격 정지 1년의 징계를 했다. 의사회 김선웅 법제이사는 “조사를 마치는 대로 이들의 불법행위를 (사법당국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G성형외과 측은 의사회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의사회는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무분별한 과대광고로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행위를 자제하고 ▶성형 광고를 규제하는 국회 입법을 추진하고 ▶환자의 동의 없이 의사가 바뀌는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하고 ▶의사회 홈페이지에 신고센터를 개설해 회원 의사들의 불법행위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글=박현영·류장훈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