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평 아파트, 구멍난 양말 … 17억 내놓은 할머니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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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80대 할머니가 평생 모은 전 재산 17억원을 대학 장학금으로 내놨다. 현금 11억원이 든 통장은 통째로 대학 총장 명의로 넘겨졌고, 6억원 상당의 토지와 집 등 부동산은 사후 대학에 기증하겠다는 서약서를 썼다.

 주인공은 대구 이옥자(80) 할머니. 그는 지난해 12월 전 재산을 이렇게 영남대에 기부했다. 전달식이나 기념촬영도 없이 딱 한 마디만 남기고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에 세끼 먹는 건 똑같은데… 쓸데없이 은행에 쌓아만 두면 뭐하나. 인재를 기르는 데 도움이라도 돼야지.”

 지난 7일 영남대병원. 할머니는 다리를 다쳐 입원 치료 중이었다. 기자가 “좋은 일로 뵈러 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곤 “칭찬 들을 일이 아니다”며 사진 촬영을 끝내 거절했다. 할머니가 영남대에 기부한 이유는 단순했다.

 “호흡기 질환으로 수십 년간 영남대병원을 다녔어. 그러던 중 신문에서 기부 이야기를 들었지. 그래서 결심했지… 빈손으로 떠나기로.”

 1950년대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한 할머니는 30대 초반에 남편과 사별했다. 이후 자식 없이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한다. 다행히 땅과 상가 등 유산을 물려받아 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지인·가족들과 자꾸 멀어졌어. 외출은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박혀 있었지. 그러길 한 50년쯤 될 거야.”

 이 할머니는 서구의 59㎡(18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집에는 에어컨도 하나 없다고 한다. 실제 병원에서 양말은 구멍 난 걸 기워 신고 있었다. 기부로 빈 손이 된 할머니는 현재 대학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에 도입 예정인 ‘나눔기본법’, 이른바 ‘김장훈법’(기부자에게 기부액의 최대 50%까지 연금으로 지급)의 모델이 되는 셈이다. 영남대는 지난 1월부터 은행 이자에 해당하는 200만원 정도를 할머니의 통장으로 매월 입금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따로 모아 장학금으로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재훈 영남대 대외협력처장은 “다 기부하고, 할머니는 정작 비상금을 쪼개 생활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 “병원비·약값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해 돈을 조금씩 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남대는 할머니의 돈을 모두 장학금으로 쓰기로 했다.

 기자에게 할머니는 그만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해….”

 ◆기부천사 노인들=2011년 고 손영자(여·당시 66세)씨는 장학금으로 써 달라며 통장에 들어 있던 6억4000만원을 영남대에 전달했다. 지난 8일에는 한 70대 할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 1억원을 장학금으로 써 달라며 대구가톨릭대에 기부하기도 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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