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분도 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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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뒷거래로 비싼 값을 치르면서 구태여 9분도 쌀만 먹어야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면 이는 당연히 막아야 한다.
5%에 불과하다는 농목산부장관의 추계가 사실이라면 이 9분도 쌀 수요자들은 분명 높은 소득계층의 사람들일 것이다. 비싼 생계비를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층으로서는 선택의 자유를 주장할지도 모른다. 다른 쌀값에의 영향만 없으면 이런 주장은 오히려 생산자인 농민을 위해서도 소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지금 오르고 있는 쌀값은 소비지 가격에 이끌리고 있기 때문에 생산자에게는 큰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중간상인들만 폭리를 얻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암거래 쌀 시세가 다른 일반미 값까지 높이게 하는 점이다. 당초부터 9분도니, 7분도니 하는 구분자체가 분명치 않음을 기화로 7분도 쌀까지 9분도 행세를 하기가 예사였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부미가 일반미로 둔갑하는 사례까지 생겨난 것은 반드시 어느 한쪽만의 탓이기보다는 종합적인 양정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기왕 9분도 쌀 거래를 억제할 방침이었다면 진작부터 암거래의 여지를 철저히 없애 고소득층이라도 7분도 쌀에 만족하도록 유도했어야 했다. 정부미도 중질미 확보를 늘려 단 경기에 집중 공급할 수 있었다면 지금 같은 파동은 겪지 않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 어느 쪽도 아닌 채 형식적인 단속만 해오는 동안 상인들은 오래 전부터 단 경기를 노렸을 것이다.
일반미는 이제 산지에서도 재고가 많지 않다. 일부 큰 농가 이외에 공급능력이 줄어들 때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질이 나은 정부미를 본격적으로 방출하는 일이다. 7월부터 정부는 이미 35개 소비도시에 정부미를 무제한 방출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반미 수요가 줄지 않는 것은 방출미의 질이 너무 나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묵은 쌀부터 낼 것이 아니라 질이 좋은 것부터 골라서 풀면 정부미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나아질 수 있다. 다행히 올해는 확보된 물량이 넉넉하므로 너무 오래된 쌀은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썩거나 냄새나는 쌀을 계속 먹어야만 하겠는가. 쌀값파동이 아니더라도 정부미의 질을 높이는 노력은 항상 지속되는 것이 옳다.
이번의 쌀값 파동은 결국 일부 고소득층의 지각없는 일반미 편향과 이를 틈탄 상인들의 조작과 매점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로서는 쌀값이 안정될 때까지 만이라도 당분간 좋은 쌀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이 자구책이 될뿐더러 가계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정부로서는 중간유통과정의 모든 부정거래에 대해 집중적으로 단속하여 상인조작의 여지를 없애도록 해야할 것이다. 기왕 금지된 9분도 쌀의 암거래는 물론 도정도를 속여 판다든지 정부미를 일반미에 섞어 내놓는 등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처하기 바란다.
쌀값 안정에 가장 중요한 점은 적기의 물량공급에 있으므로 지역별 정부미 공급에 불균형과 차질이 없도록 배려하는 것도 긴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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