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더비에 역습 당한 '신세대 기업 사냥꾼' 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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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월가의 신세대 기업 사냥꾼’ 대니얼 롭(Daniel Loeb·53) 서드포인트 대표는 편지로 이름을 날렸다.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무능을 비판하는 공개 서한을 띄우는 방식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CEO들은 그의 최후통첩성 편지에 수세적이었다. 그런데 예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의 윌리엄 루프레흐트(58) 회장은 되받아쳤다. 그는 8일(현지시간) 롭을 비판하는 53쪽짜리 편지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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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프레흐트는 편지에서 “롭이 우리 회사(소더비) 이사가 되겠다고 나섰다”며 “그는 예술품 경매에 경험과 지식이 없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초 롭은 루프레흐트 등 경영진의 무능을 질타하는 편지를 띄웠다. 여기엔 자신을 포함한 3명이 “이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어 있었다. 루프레흐트는 단순히 롭의 자질만을 공격하지 않았다.

행동주의 투자자로서 그의 전략과 전술을 비판했다. “롭은 이사가 돼 다른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다”며 “단기간 이사로 있으면서 회사를 압박해 자기 지분을 고가에 사들이도록 했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날 미 경영 전문 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소더비 경영진이 롭을 적극적인 투자자가 아니라 협박꾼으로 색칠하고 나섰다”며 “루프레흐트의 비판은 롭이 받은 반격 가운데 가장 매서워 보인다”고 했다.

 승패는 두 달쯤 뒤인 5월 6일 갈린다. 그날 소더비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다. 블룸버그 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그때까지 양쪽은 매서운 말을 주고받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양쪽의 공방은 2012년 가을 시작됐다. 롭이 소더비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엔 롭이 공개 서한을 띄워 “소더비는 너덜너덜한 명작처럼 복원작업이 필요하다”며 “경영진을 교체해 비용을 낮춰 이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더비의 루프레흐트는 처음엔 편지를 통한 반격 대신 ‘독약처방(Poison Pill)’을 선택했다. 그는 이사회를 열고 경영진에 신주인수권을 부여했다. 롭이 2012년 가을부터 지분을 매집한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그러자 롭은 ‘신주인수권 부여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로이터 통신은 “롭은 여론전의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실제 롭은 2012년 편지를 띄워 당시 야후 CEO인 스콧 톰슨을 비판하며 이사회에 입성했다. 그는 그해 5월 톰슨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곤 보유 주식을 야후에 되팔아 100% 넘는 수익을 챙겼다.

 편지를 이용한 롭의 게임 방식은 선배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78)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칸은 편지를 공개하기보다는 물밑에서 펀드들의 지지를 확보해 이사회에 진출한다. 또 롭은 아이칸보다 경영진 교체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미국 기업이 리더십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고 선언할 정도다.

 롭의 편지 전술은 주주 행동주의와 거리가 먼 일본에서도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소니의 경영진을 비판하며 엔터테인먼트 부문 분사를 요구했다. 당시 블룸버그 통신은 “롭의 비판과 공격은 일본 경영자들에게 아주 생소한 일”이라며 “그가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소더비 경영진이 야후의 톰슨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소더비는 2000년에도 기업 사냥꾼의 공격 때문에 경영진이 물갈이된 적이 있다. 루프레흐트 등이 독약처방과 편지 공개를 불사하며 롭의 공격에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롭이 확보한 지분은 9.6% 정도다. 주요 주주지만 이사 선임을 좌우할 만큼은 아니다.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소더비 내부에 분란이 있어 롭이 이길 수도 있다고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강남규 기자

◆대니얼 롭=1961년 미국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사모펀드·헤지펀드·씨티은행 등에서 금융기법을 터득했다. 95년엔 가족과 친구들한테 빌린 330만 달러로 헤지펀드 서드포인트를 설립했다. 지금은 자산 규모가 130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2011년에 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 국채를 사들여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의 열렬한 지지자다. 지난 대선 때 그의 선거자금을 모아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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